쓰시마에서 동양의 나바론 요새를 보다

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는 쓰시마

등록 2017.03.27 15:08수정 2017.03.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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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리들은 한국전망대가 있는 쓰시마 북쪽의 '와니우라(鰐浦)'로 갔다. 와니(鰐)는 일본어로 '악어'라는 뜻으로 와니우라는 악어포구라는 의미이다. 악어 이빨과 같은 바위섬이 바다 한가운데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곳의 와니는 백제인으로 일본에 유학을 전해준 왕인(王仁)박사의 일본식 발음이기도 하다. 왕인 박사가 처음 일본으로 갈 때 이곳을 거쳐 갔다고 전한다. 와니우라는 포구가 커서 선박을 정박시키기엔 알맞지만 북쪽 포구 앞바다에는 암초가 많고 얕은 여울이 있어 조류가 제법 센 곳이다.


나는 한국전망대에는 두어 번 왔다 갔지만, 늘 밤에 와서 전망대 아래를 정확히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볼 기회가 생겼다. 전망대 입구 오른쪽 아래에는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朝鮮國 譯官使 殉難之碑)'라는 비석과 함께 표지석과 안내문이 있다.

조선국 역관사 순난비 일본 쓰시마 ⓒ 김수종


조선 숙종 29년(1703) 음력 2월7일, 부산에서 한천석, 김영민, 김수영을 비롯한 조선의 외교관들이 승선하여 출발한 배가 이곳 와니우라 앞에서 침몰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선박3척, 수장된 역관사 108명, 대마도 출신 선원 4명이 사망했다. 이때 죽은 역관사들의 고국인 부산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조난자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1991년에 세운 비석이다.

일본 쓰시마 파도에 침몰한 배의 모형 ⓒ 김수종


이 비석은 전체 112개의 영석으로 만들어졌다. 사망자 112명을 추모하는 뜻이다. 옆에 있는 표지석과 안내의 글은 쓰시마 소가종가의 문고를 정리하다가, 당시 수장된 112명의 명단이 발견되어 이름 전부를 돌판에 새긴 것이다. 옆에는 배의 형상을 새긴 돌도 있다. 이것들은 지난 2003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21대 쓰시마 도주 소 요시자네(宗義眞)가 사망했고, 23대 도주 소 요시미치(宗義方)가 취임을 하게 된다. 이를 조문하고 축하하기 위해 오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당시 사절단은 요즘으로 보면 외교관들과 함께 무역을 하는 상인, 선원들로 규모로 보아 조선통신사라기보다는 공무원들이 쓰시마 번에 출장을 오가던 공무 중 사고였던 것이다. 

1719년 이곳을 지난 조선통신사 신유한은 해유록(海遊錄)에 "바다 한가운데 늘어선 큰 돌들이 마치 고래의 어금니와 범의 이빨 같았다. 그 가운데 배가 들어가 한 번만 실수하면 부서지고 엎어지기 십상이다"라고 기록했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 그런지 요즘은 드나드는 배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일단 우리 일행은 잠시 추모를 하고는 전망대 안으로 입장했다.

일본 쓰시마 우니지마의 자위대 기지 ⓒ 김수종


탑골공원에 있는 팔각정과 비슷한, 지난 1997년에 세워진 한국전망대다. 맑은 날이면 부산이 보인다. 전망대 내부에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부산 야경사진이 전시돼 있다. 전망대 앞 '우니지마(海栗島)'에는 자위대 기지가 보인다. 전망대 바로 아래 언덕에는 한국이 원산지인 이팝나무 3천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일본 쓰시마 부산에서 49.5KM의 일본 ⓒ 김수종


쓰시마의 시목(市木)인 이팝나무 군락지가 있는 이곳에는 높이 15m, 둘레 70cm에 달하는 나무들이 엄청나게 많다. 일본에서는 귀한 이팝나무가 쓰시마에선 여기에만 자생한다. 매년 5월 초순경 축제가 열릴 때쯤 1.5~2cm의 꽃잎이 4개로 갈라진 순백의 꽃이 활짝 핀다. 마치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이 앞바다에 비쳐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1928년 이곳은 이팝나무 자생지로써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5월에 다시 방문하도록 하자.

일본 쓰시마 동백이 참 많은 섬이다 ⓒ 김수종


이곳 전망대의 뒷산이 바로 '고라이야마(高麗山)'다. 산은 나중에 올라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우측 바다 쪽으로 더 나가 있는 '구노시타자키(久ノ下崎)'로 천천히 걸어갔다. 동백나무가 무척 좋은 곳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징용자 2만 명을 동원하여 만든 '토요호다이아토(豊砲台跡)'가 있다.


일본 쓰시마 토요호다이 유적 안내판 ⓒ 김수종


지하에 터널모양으로 만들어진 포탑포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를 점령한 독일군이 보스포러스 바위 절벽 아래 설치한 포대인 '나바론 요새'를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포탑(turret)이란 적의 화기나 공중폭격으로부터 포, 사수, 포실(砲室) 등을 방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강철제의 장갑구조물이다. 원래 대형전투함의 포에 채용되었으나 요새에도 설치된다.

20세기 초에 발명된 유압식 구동장치에 의하여 무거운 포탑을 자유롭게 운동시킬 수 있게 되어 현대적인 포탑의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그 후 각국의 주력함에 포탑을 설치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개발된 미사일이 각종 군함에 설치되자 포탑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되어 최근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쓰시마 포대의 구조도 안내판 ⓒ 김수종


일본제국시대 쓰시마에 31개의 포대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포는 사정거리가 30Km에 달하는 대형 포탑포대였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곤 깜짝 놀랐다. 지나가는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전쟁 때 쓰던 포대의 흔적"이라고만 했다. 직접 들어가 보기 위해 아래로 이동했다.

입구에서 들어가 보니 정말 규모가 대단하다. 단순히 1층 구조가 아니라 2층으로 된 터널모양으로 실내에는 여러 가지 시설이 있었다. 위에서 본 큰 구멍의 모습도 보았다. 아래에서 위를 보니 정말 대단해보인다.

일본 쓰시마 포대 아래에서 본 하늘 ⓒ 김수종


어두운 길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노동자들의 피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곳에 서 있으니 무시무시하고 두렵기도 하다. 80여 년 전 이곳에서 고생했을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어른거린다. 정말 전쟁은 없어져야 할 재앙인 것 같다. 쓰시마에 여러 곳이 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다른 곳을 한두 곳 더 가봐야겠다. 다시 한 번 쓰시마에 너무 많은 역사유적이 있음에 놀란다.

일본 쓰시마 신사의 도리이 ⓒ 김수종


이어 히타카츠항구로 길을 잡아 작은 '미즈노에(みずのえ,壬)신사'를 둘러보았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지 이곳 입구 안내판 앞에서는 포탄이 두어 개 보인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복원을 한 듯한 느낌이 드는 신사이다. 이곳에서도 70년 이상 지난 전쟁의 상처를 발견하다니 정말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 쓰시마 포탄이 남아있는 신사의 마당 ⓒ 김수종


이제 식사를 위해 히타카츠항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짬뽕과 양념돼지고기덮밥인 '돈짱동(豚ちゃんどん)'을 반반씩 주문하여 7명이 나누어서 먹었다. 나는 돈짱동이 생각보다 맛있어 쓰시마에 오면 자주 먹는 요리가 되었다. 부산에서 두 사람이 더 와서 총원 9명이 되었다.
  

일본 쓰시마 매운 돼지고기 덮밥 ⓒ 김수종


이제 항구 인근에 있는 해안으로 갔다. 쓰시마는 주로 진흙이 융기하여 만들어진 점판암(粘板岩)토양이 많은데, 바닷가에 가면 파도와 소금의 영향으로 정말 재미난 모양의 바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좋다. 우리들은 산책도 하고 조개도 잡고 성개도 만져보면서 잠시 쉬었다. 나는 오랜 만에 성개도 잡고, 굴도 따고, 톳도 땄다.

일본 쓰시마 처음 본 성개 ⓒ 김수종


일본 쓰시마 점판암의 바닷가 ⓒ 김수종


#일본 #쓰시마 #한국전망대 #토요호다이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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