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라는 이중 억압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도 학교 공간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학교 공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공간인지 대전지역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두 달간 연재한다. 이번 글은 성소수자 청소년 비밀이 친구 ET를 인터뷰한 것이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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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T님 소개
- 안녕하세요. ET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비밀님 친구 ET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고 시스젠더(신체 성별과 사회 문화적 성의 일치)인가? 시스젠더라고 하는 거 맞죠? 그리고 이성애자예요. 지지자로서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닌데도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인터뷰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친구가 인터뷰 권유할 때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해서. 농담이에요. 친구가 인권 모임 활동 한다고 전에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제가 이 인터뷰를 함으로써 친구의 인권 보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2. 커밍아웃을 받은 경험
- 지금 이 인터뷰에는 퀴어 친구의 지지자로서 참여하게 되신 거잖아요. 처음 커밍아웃을 받았을 때는 어땠어요?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실 꽤 오래된 일이라 막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그러진 않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아파트 단지 안의 벤치에서 들었던 것 같아요. '나 사실 양성애자인 것 같아'라고 했었나? 듣고 나서 좀 놀라기는 했지만 혐오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그 고백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스스로는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그 때 얘기가 나와서 듣다보니까 비밀님은 그 때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다 기억하고 있길래 놀랐어요.
앞으로는 커밍아웃이나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었을 때 좀 더 신중하게 반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말하기 전부터 약간 알게 모르게 느낌이 왔던 것 같아요. 친구가 그 쪽이라는 느낌이요. 저 스스로도 그 때는 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래요. 그 때쯤 비밀님이랑 만날 때 유독 한 친구 얘기가 자주 나왔고, 또 그 친구 집 방향을 보고 있을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 혐오감 없이 받아 들였다니, 커밍아웃을 받기 전에 편견이 별로 없으셨나봐요?
"이것도 저는 기억 못하고 있다가 비밀님이 나중에 들려준 말인데요, 커밍아웃을 듣기 전에 같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대요. '레즈비언들 실제로 한 번 보고싶다. 우리랑은 좀 다르게 생겼을 것 같아.' 그래서 비밀님이 되게 예민하게 반응했었다고. 근데 이거 비밀님이 자기 인터뷰에서 말했다던데? 저도 모르게 어떤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설마 내가 그런 말을 할 때 바로 앞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성소수자일 줄이야. 그 얘기를 다시 들었을 때도 반성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이거 말하다보니까 인터뷰가 아니라 자아성찰과 반성의 시간 같네요(웃음). 하여튼 요즘은 학교에서나 인터넷에서나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영향이죠. 그리고 사실 이전에는 성소수자, 사실상 아는 건 동성애자뿐이었지만, 그들의 존재만 알고 있었지 그 이상으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아 그런 사람들이 있구나. 근데 나랑 그렇게 큰 상관은 없지 않나? 이정도? 근데 이게 내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예전보다는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3.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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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솔롱고스
- 비밀님과는 같은 학교예요?
"아니요. 다른 학교예요. 아쉽게 떨어졌죠."
- 혹시 비밀님이 퀴어로서 학교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요?
"정확히 들어본 적은 없어요. 스스로 말을 잘 안 해요. 유일하게 커밍아웃 한 친구가 저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저한테도 말을 잘 안 해요. 다른 학교라서 제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저는 퀴어 관련된 대화를 나눠도 크게 상관 없는데, 일단 얘기하는 장소가 주로 집 근처 카페니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아웃팅이 걱정된다고 했었고, 또 헤테로인 저에게 한 번 퀴어 인권 얘기를 꺼내면 만날 때마다 그 얘기만 하게 될까봐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아마 힘들겠구나, 짐작만 해요."
- 그렇다면 비밀님과 상관 없이, ET님의 학교에서 직접 목격하거나 들었던 성소수자 혐오 표현이나 사례가 있었나요?
"많아요. 일단 제일 많이 봤던 건 종교적 이유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죠. '더러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하나님이 남자 여자를 만든 이유가 뭔데···'라면서 성경을 구구절절 읊는 친구도 있었어요. 자연의 순리가 어쩌고저쩌고. 성소수자를 너무 가볍게 농담 삼아서 얘기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이성애자들 가지고는 그런 말 안 하잖아요? '너 게이 같아, 레즈 같아' 이렇게 성소수자를 욕과 비슷한 의미로 쓰는 정도는 흔하고요. 예전엔 그냥 쟤는 저런가보다, 저건 그냥 농담인가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이제 퀴어 친구를 두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좀 화가 나죠. 제 성격상 대신 싸워주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굉장히 분노해요. 또 만약에 제가 혐오표현 하지 말라고 하면 '너도 동성애자야? 왜 그런 사람들을 감싸?' 그럴 것 같아요. 실제로 저런 논리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어요."
- ET님의 학교에도 성소수자 친구가 있을 텐데, 그 친구들은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겠네요?
"우리나라의 인식과 시선 자체가 별로 좋지 못한 편이라. 그 친구들이 어디서든 안전하다고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학교라고 예외는 없어요. 오히려 더 심하면 심한 것 같아요. 학교 친구들 중에 솔직히 인권에 관심 가지고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저 스스로도 제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다른 친구들도 아마 대부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자기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막말을 하는 거겠죠? 주변에 있을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거면 진짜 성격 이상한 거고."
- 학교에서 성소수자 친구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인식 개선이 제일 중요하죠. 사회 전반적인 인식 수준이 오르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그러려면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시행되어야겠죠. 비밀님도 똑같이 답했다고 들었는데, 뻔한 답일지 몰라도 제 생각엔 제일 중요한 일이고, 꼭 필요하고, 그만큼 강조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퀴어 친구를 두고 있으면서도 성소수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고, 함께 섞여서 잘 살기 위해서는 일단 차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첫걸음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너의 가족, 친구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있다고 알려줬다면, 어떤 정체성이 있고 무슨 말을 하면 안 되는지 알려줬더라면 제가 커밍아웃을 받을 때도 좀 덜 놀랐을 거고 학교에서의 혐오 표현도 덜 하지 않았을까요? 성소수자 학생도 똑같이 학생이고 사람이잖아요. 비성소수자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어려움을, 많은 성소수자 친구들이 겪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정체성만 빼면 비성소수자랑 다를 게 없는 친구들인데, 학교에서 교육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가 지워지고 밥 먹듯 혐오 표현을 듣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성교육을 받을 때 다른 정체성은 물론이고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단 한 번도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혐오 표현을 뱉는 친구들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진심으로 정말 너무너무 싫어서 말한다기 보다는 무지해서, 모르고 그러는 것 같은 친구들이 보이기도 하고요. 본인이 혐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전에 티비를 보다가 아주 어린 아이가 성소수자에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고, 여자끼리 좋으면 만날 수도 있는거야!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도 학습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처럼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는 잘못된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혐오감을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이제는 지지하는 법을 교육하면 되지 않을까요?"
#4. 지지
- 아까부터 계속 커밍아웃을 받은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나요?
"일단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소수자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 것이요. 이성애자들이 대부분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성애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것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누구를 사랑하든 결국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성애나 이성애나 똑같잖아요. 동성애는 잘못된 게 아니라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죠.
그리고 말도 뱉기 전에 신중하게 한 번씩 더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마 커밍아웃을 받지 않았더라면 제가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었을까요? 안전한 학교를 위해 뭐가 필요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냥 멍하니 있다가 어버버거렸을걸요. 편견이 많이 깨졌고, 생각이 한 층 더 열리게 된 것 같아요. 좋은 쪽의 변화가 많이 일어났어요."
- 만약 또 다른 친구가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도 별로 당황하지 않으시겠네요?
"그럼요. 이미 한 번 경험해봤고, 또 지금은 생각이 열려있는 상태잖아요. 다른 친구가 저한테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도 관계는 그대로일 거예요. 그리고 커밍아웃을 정말 큰 마음 먹고 정말 믿는 사람에게 하는 거라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만약 저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저를 믿어줬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것 같아요."
- 정말로 잘 된 일이네요. 이제 질문은 다 끝났어요.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나와 같은 이성애자들에게, 그리고 나중에 커밍아웃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다른 거지 틀린 게 절대 아니에요.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 사랑에 정답의 형태 같은 건 없어요. 당신의 가족, 친척, 친구, 아니면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누군가까지도, 우리 주변에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시대가 오면 제 친구도, 다른 성소수자분들도 덜 고생할 테니까요. 아니, 아예 안 하려나?"
* 인터뷰에 참여하신 ET님은 지난 주 기사의 주인공, 비밀님의 비성소수자 친구다. 또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의 ALLY 선언에도 동참했다.
*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는 2015년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 저지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정상적 성과 비정상 적 성으로 구획하여 이성애 정상성을 지원하는 시스젠더 헤테로 유성애자 중심적 사회에 저항하며, 수도권 중심으로 자원이 집중되는 수도권 중심주의에 문제의식을 갖고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대전 시민들과 행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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