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성 대표
여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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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성 대표 역시 와인을 만나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평생을 철도공사 직원으로 안주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와인을 선택하면서 그의 인생은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거의 10년 가까이 매년 외국 와이너리 견학을 갔고, 와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와인은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늘 좋은 일만 있지 않았다. 영동군 와인생산자들이 '영동와인연구회'를 구성했을 때, 여인성 대표는 초대회장이 되었다. 이 때, 그는 영동 와인을 홍보하는 등 대외활동이 늘면서 바빠졌지만, 반대로 그의 와인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외부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정작 중요한 와인을 소홀히 하게 됐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영동군에서 주최하는 와인축제에 나가야 하는데 다른 활동을 하느라 내놓을 와인이 없는 거예요. 어떡해, 축제에 안 나갈 수 없으니 와인을 만들어야지. 레드 드라이와인이 만들기가 제일 쉬워요.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인데 대충 만들었어요. 당연히 안 팔렸죠. 정말 초라할 정도로. 옆 부스가 도란원이었는데, 거기는 잘 팔리는데 우리는 안 팔리니 기가 죽었죠. 내가 봐도 우리 와인이 영 아니었어요."비참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외적으로는 영동와인이 많이 알려져 방송 출연을 하면서 매스컴을 많이 탔는데, 정작 자신이 만든 와인은 기대 이하였으니 자괴감을 견디기 어려웠단다. 대한민국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여포의 꿈' 와인을 만들어왔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