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잔뜩 낀 와인, 실패 아닌 대박일 줄이야

[최정욱 소믈리에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와인기행] 여포와인농장 ③

등록 2017.04.05 11:14수정 2017.04.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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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성 대표
여인성 대표여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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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성 대표 역시 와인을 만나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평생을 철도공사 직원으로 안주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와인을 선택하면서 그의 인생은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거의 10년 가까이 매년 외국 와이너리 견학을 갔고, 와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와인은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늘 좋은 일만 있지 않았다. 영동군 와인생산자들이 '영동와인연구회'를 구성했을 때, 여인성 대표는 초대회장이 되었다. 이 때, 그는 영동 와인을 홍보하는 등 대외활동이 늘면서 바빠졌지만, 반대로 그의 와인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외부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정작 중요한 와인을 소홀히 하게 됐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영동군에서 주최하는 와인축제에 나가야 하는데 다른 활동을 하느라 내놓을 와인이 없는 거예요. 어떡해, 축제에 안 나갈 수 없으니 와인을 만들어야지. 레드 드라이와인이 만들기가 제일 쉬워요.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인데 대충 만들었어요. 당연히 안 팔렸죠. 정말 초라할 정도로. 옆 부스가 도란원이었는데, 거기는 잘 팔리는데 우리는 안 팔리니 기가 죽었죠. 내가 봐도 우리 와인이 영 아니었어요."

비참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외적으로는 영동와인이 많이 알려져 방송 출연을 하면서 매스컴을 많이 탔는데, 정작 자신이 만든 와인은 기대 이하였으니 자괴감을 견디기 어려웠단다. 대한민국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여포의 꿈' 와인을 만들어왔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여인성 대표와 최정욱 소믈리에
여인성 대표와 최정욱 소믈리에유혜준

결국 그는 영동와인연구회장에서 물러났고, 오로지 와인에만 매달렸다. 다음 해, 전 해의 굴욕을 만회라도 하듯이 영동군 와인축제장에서 그의 와인은 대박을 쳤다. 날개 돋친 것처럼 팔렸을 뿐만 아니라 와인품평회에서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이 때 내놓은 와인은 로제와인이었다.


이 와인, 기막힌 이야기가 숨어 있다. 처음 만들었을 때 실패라고 생각해 버리려고 했다나.

"델라웨어 포도를 재배하던 친구가 포도원을 폐원하게 됐는데, 포도가 말라버린 채로 매달려 있는 상태였어요. 버리기 아깝잖아요. 그걸 따서 일부는 압착기로 즙을 짜고 일부는 줄기만 털어내고 와인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와인 위로 곰팡이가 두툼하게 낀 거야. 와인을 만들었을 때 곰팡이가 피면 와인으로 쓸모가 없다는 게 그 때의 통념이었어요. 그래서 버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죠."


곰팡이 알레르기가 있는 김민제 대표가 고생하면서 딴 포도라서 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곰팡이를 걷어내고 여과를 했더니 향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맛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그렇지만 전에 만든 와인 품질이 형편없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여 대표는 자신이 없었다.

"나만 좋은 거지, 다른 사람이 먹으면 절대로 좋다는 말을 안 할 거 같았어요. 자신이 없어진 거지. 그래도 알렉산드리아를 약간 섞어서 로제와인으로 출시를 했어요. 그런데 그게 덜컥 대상을 받았던 거죠."

이 대목에서 최정욱 소믈리에가 나섰다.

"그렇게 와인을 제조하는 것을 파시토 방식이라고 하는데, 포도를 말려서 수분을 줄이고 당도를 높여 와인을 만드는 것이죠.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 곰팡이 막을 형성해 공기접촉을 막아 곰팡이의 독특한 향이 와인에 스며들게 하는 것은 스페인 셰리에서 쓰는 숙성방식입니다."

이 와인, 와인축제 때 단 한 병도 남기지 않고 죄다 팔았다. 그 전 해에는 비참할 정도로 와인이 팔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옆 부스에 미안할 정도로 와인이 팔렸으니 단단히 설욕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를 배웠다. 좋은 와인은 사람들이 먼저 아는구나.

 여포의 꿈 화이 와인
여포의 꿈 화이 와인윤한영

그 다음에 그가 개발한 와인이 '여포의 꿈 화이트와인'이다. 알렉산드리아 품종으로 만들었다. 2015년과 2016년,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 와인품평회에서 대상 2연패를 한 바로 그 와인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술과 노력을 기울여 정성스럽게 만든 와인이란다. 이 와인을 마신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이 와인에 대해 "가볍지 않은 달콤한 단맛이 나는 와인"이라며 "아이스와인 느낌이 나지만 디저트 와인으로 마시는 것보다 음식과 같이 먹는 게 더 좋다"고 귀띔한다.

아무리 좋은 와인을 만들면 뭐 하나. 팔려야지 다음 해에 와인을 만들 동력이 될 텐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와인축제에서 아무리 많이 팔린다고 해도 팔리는 수량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구세주 같이 등장한 것이 바로 광명동굴이다.

여인성 대표는 최정욱 소믈리에로부터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다른 와이너리 대표들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와인을 팔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광명동굴에 와인을 납품했다. 이 때 영동에서 여포와인농장, 컨츄리와인, 도란원, 원와인, 와인코리아 이렇게 5개 와이너리가 광명동굴에 와인을 납품했다. 이들이 함께 와인 납품을 한 것은 물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여포의 꿈 화이트와인은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페스티벌에서 대상인 마루상을 받았다.
여포의 꿈 화이트와인은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페스티벌에서 대상인 마루상을 받았다. 윤한영

그런데 그 다음 주에 곧바로 와인이 완판 됐다면서 더 가져다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2015년 4월이었다.

"이 사람이 장난하나, 했어요. 200병쯤 보냈던 것 같은데 주말이 지나자마자 다 팔렸다고 하니, 거짓말 같잖아요."

그 이전까지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광명동굴 덕분에 저는 아주 좋았지요. 2015년과 2016년에 와인품평회에서 대상도 타고, 와인도 많이 팔리고."

그래서일까, 여인성 대표는 광명동굴에 거는 기대가 크다. 광명동굴이 여포와인농장 같은 농가형 와이너리나 소규모 와이너리 등의 와인을 차별하지 않고 판매하면서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광명동굴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와인이 팔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 같은 특수를 누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2015년에만 해도 광명동굴에 납품되는 와인은 100종을 넘지 않았지만, 지금은 50여 개 와이너리에서 200여 종의 와인이 들어오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입점을 희망하는 와이너리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해결책이 있다면 광명동굴 와인 판매량이 전체적으로 확 늘어나는 것이다. 10만 병, 20만 병.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2016년에 광명동굴을 찾은 관광객은 142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가운데 10%만 한국와인을 구매한다면 14만 병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포와인농장을 방문한 이태리 사람들.
여포와인농장을 방문한 이태리 사람들.여인성

그래서 최정욱 소믈리에는 한국와인생산협회와 손잡고 한국와인 판매 확대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덕분에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한국와인 붐이 조성되고 있다.

와인에 미쳐 산 지 20여 년이지만 여인성 대표의 와인에 대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전히 불꽃을 활활 피우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꿈을 꾸고 멈추지 않으면 그 꿈은 이뤄집니다. 꿈을 향해 가다가 멈추면 그냥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면, 넘어져 무릎이 다 깨지고 없어져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면,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꿈이 제게는 와인인 거죠."

그는 그 꿈이 이뤄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다.
#와인기행 #여포농장 #여인성 #최정욱 #한국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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