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사이, 독특한 문화를 지닌 도시다
참여사회
이른 새벽,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 6개월 전 예약한 숙소로 향한다.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사는 숙박 공유 플랫폼에서 한 달 35만 원으로 무척이나 저렴하게 예약했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던가! 안내받은 방은 빨래와 쓰레기가 뒤엉켜 방 한 구석에 모아져 있고, 침대에서는 짙은 담배 냄새가 풍긴다. 딱 지저분하고 게으른 자취생 방이다.
"안 되겠어. 이 방에서 한 달을 머물다가는 병나서 귀국할 판이야. 예약 취소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자."
집을 나오니 당장 오늘 밤부터 잘 곳이 없는 신세가 되었다. 예약 가능한 집마다 메시지를 보냈지만 반나절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른 도시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기다리고 있을게. 어서 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들과 한 달을 지내고 난 뒤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었으니 하늘의 뜻이었을까?
우리에게 회신을 보내 준 나히데는 영화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또 다른 친구 오르한은 터키 항공사에 다니면서 부업으로 살사 댄스 강습을 하는 이스탄불 토박이들이었다. 이들이 사는 곳은 이스탄불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다. 동네 이름은 '모다(Moda)'. 이름만큼 범상치 않은 장소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집에서 100m만 걸으면 나오는 이스탄불 앞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 길래 이런 바다를 볼 수 있는 건가?'라는 물음이 절로 든다.
한낮의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 있어도 좋고 아침에는 달리기를 해도 좋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짜이(Chai)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모다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쇼핑몰, 레스토랑, 극장 등이 몰려 있기 때문에 터키 현지인들로 늘 북적북적하다.
또한 인근에 터키의 축구 명문구단 페네르바체의 홈구장이 있어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열성적인 축구팬들이 모여든다. 모다가 제 아무리 멋지다 해도 호스트인 오르한과 나히데의 매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주말 아침 그들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들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리 집을 찾아준 손님이 특별한 날을 맞이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어야지. 작은 선물과 식사를 준비했으니 함께 즐겨줬으면 좋겠어."5월 5일. 때마침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오르한은 저녁 식사와 함께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모형 헬리콥터와 작은 노트 한 권을 꺼내 놓는다. 지난번 함께 마트에 갔다가 종민이 한참을 바라보며 만지작거렸던 그 헬리콥터다.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짧은 순간, 종민이 갖고 싶은 것을 정확히 집어낸 오르한과 나히데의 섬세함이 고맙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스탄불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가야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 마음속에서 이 도시는 영원히 사라졌을 테지. 아름답고 멋진 도시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