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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5번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찍으러 투표장에 다녀왔다. 녹색당 당원인 나는 이번 대선에서는 심상정 후보를 찍었다. 나는 심상정 후보와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과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에 함께 있었다. 심상정 후보는 두 번이 나 그 당을 깨고 진보신당과 진보정의당(정의당의 전신)을 창당했다.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정치는 생물이고 정당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어서 탈당과 창당 그 자체를 비판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민주노동당에 실망해 탈당하고 싶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고 목표와 방향이 다른 세력들이 모이는 통합진보당의 탄생에 동의하지 않았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란음모사건이 터지고 이석기 전 의원 등 소위 '경기동부'라고 불리던 운동 세력이 부도덕한 정권과 수구 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할 때, '헌법 밖의 진보는 용납될 수 없다'는 잊기 어려운 명언을 남기며 단 한 번도 '옛 동지'들의 편에 서지 않았던 심상정과 그 동료들에게 격한 배신감을 느꼈었다. 잘했든 잘못했든 우리가 맞서 싸워야 했던 공안탄압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말을 하며 등을 돌린 사람들과는 다시는 무엇도 함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 '구원'이 솔직히 아직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후보들 중에 내가 믿고 수호하려는 가치와 신념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면 '촛불대선'의 의미를 상실하는 일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다.
많은 이들이 심상정 후보가 TV 토론에서 매우 소중한 '찬스 1분'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속 시원한 발언에 쓴 모습에 감동 받아 심상정 후보에게 표를 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른 후보들의 가치 없는 발언들이 오고가는 중에 그 장면은 분명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라면, 평생을 노동운동과 진보적 가치를 위해 살아왔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말이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유력 대통령 후보 5명 중에 이런 당연한 일을 해낸 사람이 오직 심상정 후보 하나뿐이었다는 것이 빛나고 소중했던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차별과 혐오를 '제대로' 반대하는 유일한 후보 역시 심상정 후보뿐이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광장의 힘으로 만든 촛불대선의 날이 바로 어제(9일)였다. '다음 대통령'이 탄생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외치며 기대했던 그 결전의 날이 오늘이었다. 전체 유권자 4247만 9710명 중, 3280만 8377명이 투표하여 77.2%의 투표율을 보였다. 우리는 다 같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학습했고 부당함에 맞서 당당하게 저항하는 법을 체득했다. 공권력의 강제력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선택한 비폭력 집회는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힘을 발휘했다.
성별과 세대, 지역과 계층을 뛰어넘어 차별과 혐오가 발붙일 곳 없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광장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다시 겪기 힘들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 경험으로 우리는 우리 사회를 성장시킬 소중한 기회를 만들었다. 각자의 일상에서 마주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래서 나는 또 투표를 했고 3280만 명도 투표를 했다. 온전히 마음을 사로잡은 후보가 없었을 수도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를 찍을지 머뭇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과 성격만 또 다른 '박근혜'를 청와대에 앉히는 비극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투표의 힘으로 우리의 의지를 표현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아마 마음속에 장미 한 송이 아니 촛불 하나씩 담고 투표장으로 갔을 것이다. 권력에 취해 갈피를 못 잡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대통령이 다시 나온다면, 우리 그 촛불을 꺼내 들고 광장에서 만나자.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국민이 부끄럽고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새로운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 광장의 요구, 촛불의 바람이 잘 이루어지는지 똑똑히 지켜보자.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우리는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존재들'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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