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이 낯설기만 하다

덕유산 백두대간 길을 걷다

등록 2017.05.13 18:46수정 2017.05.1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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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무룡산 진달래가 곱게 핀 무룡산 자락

무룡산 진달래가 곱게 핀 무룡산 자락 ⓒ 임재만


지난 7일 덕유산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으로 향했다. 곤돌라 문틈으로 들어오는 산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앞서가는 곤돌라가 좌우로 흔들리며 불안하게 올라간다. 긴장한 탓에 산 풍경을 마음 놓고 바라볼 수가 없다.

설천봉에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산바람이 세게 불어와 맞아준다. 설천봉에서 물 한 병을 사들고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은 덕유산 최고봉이지만 곤돌라를 이용해 오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새잎이 막 돋은 참나무과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도 나타나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설천봉에서 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20여분 만에 향적봉에 올랐다. 정상에는 작은 나무 하나가 없다. 모두 바위로 덮여 있다. 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툭 터진 산 풍경이 참 시원스럽다.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은 바람을 타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래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어머니 품처럼 너그럽고 편안한 풍광이다.

향적봉(1614m))은 덕유산 최고봉으로 백 미터 아래쯤에 대피소가 있다. 대피소는 바람도 자고,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바람 부는 날엔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멀리 지리산 반야봉까지 볼 수 있어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대피소에서 신발 끈을 고쳐 메고 중봉으로 향했다. 중봉과 무룡산을 거쳐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걷기 위함이다. 향적봉에서 남덕유산 까지는 16km 남짓으로 1300m에서 1600m 사이를 오르내리는 아고산대 지역의 능선길이다.

중봉은 사계절 바람도 많고 기온도 서늘하여 자라는 나무가 거의 없다. 키 작은 진달래만이 군데군데 곱게 피어 있다. 분홍색이 얼마나 진하고 예쁜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중봉 아래로 펼쳐진 덕유평전은 어떤가? 바라만 보아도 소녀처럼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하이디가 살고 있는 알프스 산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한참을 앉아서 진달래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극한의 조건을 이겨내고 피워 낸 꽃이어서 색이 더 아름답다.

진달래와 야생화가 유혹하는 덕유평전으로 내려간다. 길에는 진달래가 피어있을 뿐 나무하나 없다. 넓은 구릉이다. 길에서 만나는 희고 노란 야생화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천국을 걷는 기분이다.
a 덕유평전 진달래가  핀 덕유평전의 모습

덕유평전 진달래가 핀 덕유평전의 모습 ⓒ 임재만


덕유평전을 지나 중간 목적지 무룡산을 향해 걸었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반복된다. 산죽은 쉬지 않고 내내 따라오며 길동무가 돼준다. 산길은 돌길보다는 흙길이 많아 걸어가기 딱 좋다. 산죽이 점령한 능선 길에는 숨박꼭질 하듯 분홍빛 진달래가 가끔씩 나타나 지루한 산길에 즐거움을 안겨준다. 아무리 보아도 참 고운 빛이다.


동엽령에 이르러 잠시 휴식하며 걸어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룡산이 고개를 쑥 내밀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무룡산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려다 말고 춤을 추었을 만큼 주변 풍경이 뛰어난 곳이다. 무룡산에 오르니 과연 듣던 대로 풍경이 아름답다.

사방이 탁 트여 덕유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삿갓봉 너머로 남덕유산이 병풍처럼 둘러싸며 솟아 있고, 그 왼편으로 능선을 따라 끝자락에 육십령이 붙어 있다. 지나온 중봉과 향적봉도 어머니가 자식을 배웅 하듯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다.    


무룡산을 넘자 내리막길에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어 있다. 바위사이에 피어 있는 진달래는. 삿갓봉과 남덕유산을 배경삼아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산길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산중의 꽃 중 단연으뜸이었다.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보았다. 진달래는 실망시키지 않고 빛을 온몸으로 받아 토해내며 멋진 모델이 돼 주었다.
a 삿갓봉 바위틈에 곱게 핀 진달래가 참 곱다

삿갓봉 바위틈에 곱게 핀 진달래가 참 곱다 ⓒ 임재만


a 일몰 남덕유산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

일몰 남덕유산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 ⓒ 임재만


무룡산에서 삿갓재로 내려가는 길도 사방이 탁 트여 내려다보이는 산풍경이 좋다. 덕유평전처럼 큰 나무가 하나도 없다.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마지막 풍경이라 생각되어 한참을 서서 내려다보았다. 삿갓봉이 코앞에 솟아 시야를 가릴 뿐 좌우로 산풍경이 막힘이 없다.

삿갓재 대피소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키보다 큰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어주고 산새소리도 숲속에서 가까이 들려온다. 숲 바람이 다시 거세지고 산죽이 바스락 거리며 몸을 세게 흔들어 댄다.

목적지에 다가온 것일까? 다리도  무겁고 목도 마르다. 숲 사이로 하늘이 열리는가 싶더니 삿갓재 대피소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설천봉에서부터 10km를 넘게 걸은 셈이다.

삿갓재 대피소는 난방시설 덕분에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물과 햇반을 비롯한 산행 에 필요한 물품도 팔고 있다. 산에서 하루 밤 묵어가는 대피소로 가히 산중 호텔이라 할만하다. 샘이 대피소에서 좀 떨어져 있어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9시에 소등을 하고 눈을 감았다. 고대광실이 부럽지 않다.

다음날 다섯 시,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깼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이미 새벽이 와 있었다. 아침을 간단히 빵으로 해결 하고, 어제 내내 걸어온 길을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어제 보았던 나무들과 길을 다시 마주하니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언제 이런 길을 걸었나 싶다. 올 때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경한 모습이다.

다시 무룡산을 오르는 길에 어제 보았던 진달래를 다시 만났다. 아침빛을 몸에 두른 분홍빛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그냥 갈 수 없어 다시 카메라를 꺼내어 찍고 또 찍었다. 진달래는 어제와는 달리 파란하늘을 화폭삼아 멋진 모델이 돼 주었다.   

a 진달래 파란 하늘을 화폭삼아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진달래 파란 하늘을 화폭삼아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 임재만


무룡산에 올라 목적지 향적봉을  바라보았다. 갈 길이 참 멀어 보인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중봉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산길은 어제 보다도 더 팍팍하고 힘이 든다. 어제와 다르게 오르막길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 이러한 길을 걸었나 싶을 정도로 길이 어제와 다르다.

드디어 덕유평전을 지나 중봉으로 올라섰다. 어제 보았던 진달래가 다시 반갑게 맞아준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꽃은 오래 보아야 더 예쁜 것 같다.

바위에 걸터앉아 걸아 온 먼 길을 바라보았다. 무룡산이 능선너머로 얼굴을 살짝 내밀고 아쉬운 듯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 무룡산을 남겨 두고 떠나려니 마음이 촉촉해 진다. 어느새 듬뿍 정이 든 모양이다. 중봉에 한참을 서서  덕유산을 마음에 담고 또 담았다.

중봉을 떠나 드디어 향적봉 대피소에 이르렀다. 대피소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피로가 밀물처럼 몰려든다. 비록 능선길이지만 왕복 50리길이 간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향적봉을 힘겹게 넘어 설천봉으로 내려오니 곤돌라가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맞아준다.

덕유산의 넉넉한 풍경에 반해 철쭉이 만발하는 유월에 다시 찾고 싶다.

덕유산 백두대간 산행코스

첫째날 : 설천봉 - 향적봉 -중봉- 덕유평전- 동엽령- 무룡산- 삿갓재 대피소(10km)
둘째날 : 삿갓재 - 무룡산- 동엽령- 덕유평전- 중봉- 향적봉- 설천봉(10km)
#향적볻 #백두대간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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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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