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형 계단피해자는 이곳으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
뜨인돌 제공
"눈이 가려진 피해자는 자신이 끌려온 방향이나 끌려 올라간 층수를 기억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층에서부터 쉬지 않고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에는 대략 3미터 간격으로 있어야 할 계단참이 없으므로, 자신이 몇 층에 도달했는지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어둡고 습한 원통형 계단실에 들어선 피해자는 육감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리고 1층에서 5층 천장까지 뚫려 있는 공간에서 발소리와 수사관의 윽박지르는 음성이 서로 뒤섞여 울려대는 소리는 끌려 올라가는 이에게 극심한 심리적 공포를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건축적으로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이런 공간은 건축가의 특별한 의도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50쪽)그러니까 이 건물의 독특한 구조는 끌려가는 이의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 고문실로 가는 과정도 이토록 소름이 끼치는데, 정작 고문실은 어떠했겠는가!
고문실에는 비명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음 시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흡음재 대신 목재 타공판을 사용했다. 이 또한 공포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것인데, 구체적인 이유는 책에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이곳에서 고문을 받았던 김근태 전 국회의원은 그 효과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건축가는 고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문실 천장에 달리는 전구의 형태, 색깔, 밝기까지도 지정했다. 이 공간을 들여다볼수록 고문의 고통이 느껴질 듯해서 두려울 뿐만 아니라, 건축가의 악한 의도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섬뜩하다. 다시는 나오지 말아야 할 악의 건물이며,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함께 비를 맞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책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도 안내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건물인데, 우리 역사의 비극이 어떻게 공간으로 형태화되었는지 살펴본다. 여기서도 역시 건축가의 탁월한 설명이 빛을 발한다.
이 공간은 힘든 과정을 거쳐 일반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고통에 참여하자는 취지가 잘 살아 있다.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