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윤성효
농군오리는 논에 흙탕물을 일으켜 어린 잡초가 자라는 걸 막고, 각종 해충을 잡아먹는 동시에 배설물로 천연비료까지 제공해 1석3조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오리를 잡아서 판매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주자고 했다고 한다.
친환경 농사 첫해, 봉하마을 2만 4600평의 오리농법 단지에서 총 55톤의 벼를 수확했다. 봉하쌀은 '대박'이었다.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받았는데 예상되는 수확량보다 더 많은 신청이 들어왔던 것이다.
1인당 3kg 1상자씩 한정판매하기로 했고, 1만 상자는 인터넷 신청자에게, 3000상자는 봉하마을 방문객에게 팔기로 했다. 인터넷 구매를 못한 사람들이 사저 앞 광장에 몰려들었고, 경찰관이 입회해서 공개추첨을 할 정도였다.
봉하마을 생태가 변했다. 생태연못과 무논을 조성했더니, 물고기와 수생생물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해 겨울 온갖 철새들이 봉하들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천연기념물 황새가 봉하들판에 나타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부터 들판에는 논글씨를 새겼다. "사람사는 세상", "내 마음 속 대통령",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 등이었고, 이는 올해도 만들어진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김정호 대표는 봉하를 지켰다. 그는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자연농업연구원 조한규 원장이 찾아와 "김정호 비서관,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 대통령의 유업이 차질 없도록 하려면 김 비서관이 흔들리면 안된다. 친환경 농사를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가을 명계남 배우는 김 대표한테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아무리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려보아도 그 사람은 없다, 펄밭에 넘어지며 수련을 꽂아보아도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신이 바로 노무현이다, 바보 노무현'이라 했다"고 한다.
김정호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첫 번째 봉하쌀을 수확하고, 묘소 너럭바위를 찾아 '헌정식'을 열었다. 명계남 배우가 지켜보는 속에, 김정호 대표는 너럭바위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는 "이때만큼은 오롯이 대통령을 독차지한 나만의 영결식이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농업진흥지역 해제 추진"박근혜 정부 때 생태농업에 어려움이 닥쳤다. 농식품부가 봉하마을 들판에 대한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추진했고, 경남도(당시 홍준표 지사)도 찬성했던 것이다. 농식품부 공무원을 만나기도 했던 김 대표는 "농지 보존에 앞장서야 하는 농식품부 공무원이 문제의식은커녕 오만한 행정편의주의의 민낯만 보였다"고 했다.
"연간 80만명 이상 방문객이 찾아오는 대통령의 묘역과 사저가 '손톱 밑의 가시'였던 모양이었다. 홍준표 지사에겐 봉하마을은 여전히 '노무현 아방궁'이고 '노무현 타운'이었다. 이번 기회에 봉하들판의 농업진흥지역을 해제시켜 지주들과 노무현재단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친환경 생태농업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과 생가, 생태문화공원 등을 망가뜨려버리겠다는 비열한 꼼수가 아닐 수 없었다."또 책에는 이명박정부 때 벌어졌던 '봉하 이(e)지원', '정치검찰', '서거' 등에 대해 김정호 대표가 겪었던 상황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대통령이 물꼬를 튼 생태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매달렸다"고 했다.
"대통령과 엮인 내 인생은 이미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봉화산 숲이 되었고, 온갖 폐수를 정화시키는 화포천 물이 되었다. 기운찬 봉하쌀을 키워내는 봉하들판의 논이 되었다. 먼 길을 떠난 '바보 농부 노무현'은 내게 운명이었다. 나는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