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 속의 말풍선은 필자가 삽입한 것.
김종성
미국의 간섭을 받는 나라에서 미국의 지원으로 대통령 생활을 한 사람이 미국으로 망명하려면 미국의 승인과 협조를 받는 게 당연했다. 이승만은 그런 상황 속에서 미국에 망명하고 처벌을 피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말로는 당장에라도 전 세계를 어떻게 할 것 같지만,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한국에 경제원조까지 했던 나라가 이제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가려 애쓰는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미국은 예전처럼 한국을 돕거나 마음대로 조종하기가 힘들다. 한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통령을 마음대로 조종하기도, 그 신병을 뜻대로 다루기도 힘들다.
만약 미국의 힘이 예전 같아서 한국 대통령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08년 5월에 그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을 데리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를 찾아가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 깊이 친미·친일이니까 그의 시각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라며 미국 정부를 안심시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수도 서울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여전히 미국은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한국과 한국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민 대다수의 성토를 받는 한국 대통령을 자국에 망명시키는 것은 미국 스스로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자충수가 된다. 그랬다가는 한미일 삼각 동맹을 통해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고 이를 통해 태평양에서의 자국의 권익을 지키고자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차질만 생길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은 1960년의 미국처럼 한국 대통령을 보호해줄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럴 힘도 없다.
거기다가 박근혜가 탄핵정국에 갇혀 있을 때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개성도 한국 대통령의 망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친박세력이 주최한 탄핵반대 집회에서 성조기가 날리고 미군의 개입을 희망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는데도, 트럼프는 사드 배치나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로 이문을 남길 궁리만 하고 있었다.
"사드 배치 비용은 우리가 댈 테니 한국은 땅만 제공하라"던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6일부터 사드 장비를 한국에 이동시켰다. 이날 밤, 미군 C-17 항공기가 발사대 2기를 포함한 일부 장비를 오산 미군기지에 내려놓았다.
이렇게 해서 사드 장비를 한국 땅에 들여놓고 난 뒤인 4월 27일과 28일에 트럼프는 "사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며 종전의 미국 입장을 뒤집었다. 무료 경품이라며 상품을 일단 맡긴 뒤 대금을 청구하는 방식을 구사한 것이다.
그러다 한국이 반발하자 4월 30일에는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세워 "동맹국들의 비용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라면서 초점을 사드 비용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쪽으로 돌렸다. 소파협정을 위반한 방위비 특별협정에 근거해서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를 한국에 더 많이 떠넘길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떻게든 돈을 빼낼 궁리만 하는 트럼프한테서, 과거의 아이젠하워처럼 한국 대통령을 미국으로 빼낼 발상이 나올 리는 없을 것이다.
한미관계가 변한 데에다가 트럼프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됐으니, 범죄를 범한 한국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망명에 성공해서 위신을 보존할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별로 없다. 박근혜가 이승만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데는 이런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다가 허정 같은 권한대행을 두지 못한 것도 박근혜한테는 불리했다. 권한대행이 된 허정은 국민적 이목이 자신한테 집중된 상황에서도 이승만을 보호하고 해외로 빼돌렸다. 5월 29일에는 김포공항에까지 마중을 갔다.
거기다가 허정은 '선(先) 선거, 후 개헌'이 됨으로써 차기 선거가 4·19 열풍 속에 치러지는 것을 막고자 자기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선 개헌, 후 선거'가 관철되도록 함으로써 이승만과 자유당을 조금은 더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1896년 부산에서 출생한 허정은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서 고등보통학교(중학교)를 다녔다. 이때 방과 후 학습을 위해 YMCA에 나가 영어 등을 공부했다. 이때 그를 지도한 교사 중 하나가 바로 이승만이었다. 이런 제자를 1960년에 권한대행으로 둔 것도 이승만한테는 행운이었다.
만약 한미관계가 예전 같고 박근혜가 충성스러운 권한대행까지 뒀다면, 5·29 망명 같은 일이 박근혜한테도 생겼을 수 있다. 그랬다면, 박근혜도 사법적 처벌을 피하고 위신을 어느 정도 유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우리 국민은 죄인을 죄인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또 제2의 박근혜가 출현하기 힘든 정치환경을 만드는 일에도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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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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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전 '5월 29일의 망명', 박근혜도 시도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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