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루에 관한 이해 돕기 위한 이야기

그 여름의 얄궂은 경험

등록 2017.06.02 11:42수정 2017.06.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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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직장을 드러내고 대장과 항문을 바로 연결 후 상처가 봉합되는 동안 대장 혹은 소장의 중간을 절단하여 복부 밖으로 드러내 대변을 받아 저장하는 일종의 인공 항문이다.


병의 진행 정도 종양과 항문을 살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항문을 폐쇄하고 영구 장루를 차고 다녀야 하며 종양이 괄약근과 멀어 항문을 살릴 수 있는 경우에는 일정기간 후 복원이 가능한 임시장루를 설치한다. 

장루의 역사는 일설에 18세기에 이미 유럽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장루 수술을 시행한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외과 수술이 발전 하면서 대장암과 직장암 환자들에게 시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 배꼽에서 오른쪽으로 10cm 정도의 거리에 구멍을 뚫어 대장과 소장을 연결하는 부분을 절단하여 장루를 설치하였다. 

내가 달았던 장루는 보통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면 대장과 소장의 절단 부분을 연결하는 복원 수술이 가능한 의학적인 용어로 회장루라고 했다.


장루는 직장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술로 알려졌다.

이런 시술을 몰랐던 옛날에는 그대로 직장의 고통을 참다 죽었으리라고 생각하면 진보 의술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고맙게 여겨야할 것이다.

장루 용품은 덴마크 수입품이었다.

환자는 1인당 1주일에 4개씩 4주 분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고 반품은 불가하며 개인적으로 구입 시 개당 1만원인데 중증 환자 판정을 받으면 개당 500원이었다. 

환자를 위한 정부의 복지정책인데 늘 정부에게 불이익만 받았던 내가 하필 그런 혜택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였다.

일단 장루라는 특이한 인공항문은 완치로 가는 희망의 주머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소장에는 괄약근이 없기에 통제 불가능한 배변의 상태로 인해 장루는 쉴 새 없이 부풀었는데 대변을 무한정 담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기에 터지기 전에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15년 5월 6일부터 2015년 10월 14일 복원 수술하기까지 하루 청소 횟수는 일정하지는 않지만 밤중에 두세 번 정도 아침 식사 후 한 번 점심을 먹은 후 두세 번, 저녁 식사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세 번으로 하루에 열 번 정도가 보통이었다.  

당연히 일상의 외출이나 활동이 제약받았고 그로 인해 정상인이 추구했던 삶의 질과 괴리가 컸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장루로 인해 샤워를 할 수 없었던 여름 대변과는 색깔이 다른 상태의 물질 그러면서 냄새는 대변이나 다름없었던 그런 장루를 청소했던 일은 지금도 좋은 기억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고 퇴원 후 이틀 동안은 아내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의 배설물을 남에게 보이는 일도 민망했지만 인간적인 미안함도 컸다.

대변이 차서 출렁이는 장루를 아내가 청소하는 시간이면 불편함을 넘어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5월 14일 저녁, 마침내 혼자서 장루 청소를 시도했다.

물티슈 4장, 화장지4장을 준비하고 간호사와 아내가 하던 순서를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따라했는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장루에 청소에 관한 어느 날 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매일 장루를 10여회 청소 한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 묵직하고 물컹한 장루 주머니를 비우는 일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익숙해졌고, 나만의 요령도 터득하여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다. 장루를 청소하려면 먼저 준비할 것이 화장지와 물티슈다. 그리고 물과 변을 닦아낸 화장지를 쌀 신문지가 필요하다. 또 중요한 것이 주머니 내부를 씻어낼 물이다.

순서는 하나, 준비물 점검. 둘, 변기 앞에 목욕 의자를 놓고 앉아 장루를 드러내고 변을 짜내기. 셋, 장루 배출구를 화장지로 닦아 준비된 신문지에 버리기. 넷, 패트병에 담긴 물을 장루 주둥이에 조심조심 부어 장루 내부를 씻어내기(항문에 약을 넣어 관장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씻은 물은 변기에 버리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대변 물이 튈 수 있다. 

다섯, 신문지에 놓은 화장지는 한약 첩을 싸듯 보기 좋게 접어 휴지통에 버린다. 신문지로 싸는 이유는 화장지를 그대로 버릴 경우 화장실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데 신문지를 싸서 버리면 냄새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 변기의 물을 내리고 변기 내부까지 물티슈로 닦기. 아무리 조심해도 변기에 대변이 튀기는 수가 있는데 특히 변기 안쪽의 보이지 않는 부분도 신경을 써야 냄새를 막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패트병이 없는 경우에는 물을 담은 종이컵 한 잔이면 청소가 가능한데 이런 방법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누군가의 경험담을 참고 하였다.

외출 시 급한 경우에는 종이컵에 물을 가득 담아 가지고 좌변기를 찾아 들어가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괜찮다. 다만 외출 시에는 목욕의자가 없으니 변기에 앉아 처리해야하는데 옷에 묻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마 이런 글을 보면 웃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장암 환자들만이 겪는 고충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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