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농부, 제비와 1개월을 다투다... 왜?

집 부수는 노인, 집 짓는 제비... 결국 극적으로 타협

등록 2017.06.11 19:33수정 2017.06.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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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왼쪽이 흙덩어리 처럼 생긴 것이 바로 새로 지은 제비집이다. 오른쪽은 제비가 집을 지으려던 환풍구이다. 환풍구 옆에는 제비가 집을 지으려던 흔적이 남아 있다. 흙이 묻어 있는 것이다.

왼쪽이 흙덩어리 처럼 생긴 것이 바로 새로 지은 제비집이다. 오른쪽은 제비가 집을 지으려던 환풍구이다. 환풍구 옆에는 제비가 집을 지으려던 흔적이 남아 있다. 흙이 묻어 있는 것이다. ⓒ 이재환


전래동화인 흥부놀부전에서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서 박이 자라나고 그 안에서 금은보화가 나왔다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제비는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특별하고 친숙한 새란 뜻일 게다. 살던 집을 귀신같이 찾아 돌아오는 제비의 귀소 본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래동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의 제비는 때로는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다. 제비는 사람이 살고 있는 시골 민가에 집을 짓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녀석들은 집주인이 원치 않는 자리에 집을 짓는가 하면 아무 데나 함부로 똥을 싸놓기도 한다. 이처럼 '강남'에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제비는 때로 농가에 민폐를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제비 "여기 살게 해주세요"... 노인은 퉁명스러웠다?

충남 예산의 한 농가에 살고 있는 82세 고령의 농부는 얼마 전 제비와 극적인 타협을 이뤘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농부는 근 1개월 이상을 제비와 다퉜다.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농부의 집에 집을 짓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농부는 좀처럼 제비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비가 집을 짓기 위해 농가의 처마 밑에 진흙을 물어다 바르면 농부는 그것을 즉시 떼어 버렸다. 물론 나는 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 내 집도 아닌 데다, 농부의 '이상행동'을 끝까지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골에서는 신성시 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제비를 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농부의 행동은 제비를 전혀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좀 더 참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어느덧 농부의 집에는 보란 듯이 제비집이 지어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농부가 제비에게 항복이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제비집이 지어진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니 농부가 집을 부수었던 그 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그 옆에 제비집이 새롭게 지어졌다.


그제서야 농부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제비집을 부쉈는지 물었다. 농부는 내 물음에 "자꾸 환풍구에다 집을 지으려고 하잖아"라고 답했다. 농부의 집 환풍구는 내부의 거실과 연결돼 있다. 통풍이 잘 안 될 경우 거실의 천장에 마감재로 사용된 목재들이 썩을 수도 있다. 

갈등은, 사실 갈등이 아니었다

a  농부는 제비집 아래에 신문지를 깔았다. 제비가 볼일을 보게되면 분비물이 신문지 위로 떨어지게 된다.

농부는 제비집 아래에 신문지를 깔았다. 제비가 볼일을 보게되면 분비물이 신문지 위로 떨어지게 된다. ⓒ 이재환


농부는 제비가 환풍구 앞에 집을 짓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을 부쉈던 것이다. 농부가 계속 집을 부수자 제비는 농부의 말귀를 알아들은 것인지, 농부가 원하는 장소에 새로이 집을 지었다. 농부는 제비가 새로 지은 집 아래에 신문지도 깔아놨다. 제비가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요즘 농부와 제비는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농부는 오랜 경험을 통해 제비집을 부수더라도 제비가 멀리 가지 않고, 바로 그 옆에 새로이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농부는 꾸준히 제비와 타협을 시도한 것이다. 타협하고 합의를 이뤄내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꽤 어렵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지향점과 상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결국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물론 서로 마음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필수다.  
#제비 #귀소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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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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