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갔을 뿐인데... 아일랜드의 멋을 느꼈다

적당히 투덜대며 대충 둘러본 아일랜드 여행기 ④ - 모허절벽·버른

등록 2017.06.12 09:43수정 2017.06.1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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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에 참가하느라 꼭두 새벽에 일어나는 게 싫어서 원래는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모허 절벽(Cliffs of Moher)만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4월 17일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다가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6시쯤 돌아오는 Cliffs of Moher & Burren Tour 전단을 보고 충동적으로 신청해버렸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서둘러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버스에 올랐다. 사실 터미널에 가면 비슷한 투어를 하는 여행사들이 몇 있어서 즉석에서 신청을 해도 되는데 괜히 숙소에 수수료 5유로를 줬나 싶었지만, 어쨌든 투어를 택한 것이 잘한 일이었다는 결론이다.


내내 흐린 듯한 날씨가 조금 불안했지만 비만 안 오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투어를 순조롭게 마칠 수 있기를 바랐다.

Dunguaire Castle 16세기 골웨이 만 남동부 해안에 귀에어 왕의 이름을 따서 방어용으로 지어진 이 성은, 내부는 별 볼 게 없으나 성 주위를 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며 풍경을 감상하는 맛이 쏠쏠하다.
Dunguaire Castle16세기 골웨이 만 남동부 해안에 귀에어 왕의 이름을 따서 방어용으로 지어진 이 성은, 내부는 별 볼 게 없으나 성 주위를 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며 풍경을 감상하는 맛이 쏠쏠하다.최성희

Chat Mhor 중세 초기 버른 지방의 부유한 지주가 세운 원형의 요새 입구
Chat Mhor중세 초기 버른 지방의 부유한 지주가 세운 원형의 요새 입구최성희

다음은 버른 지역(The burren) 지역으로 이동했다.

"아일랜드 카운티골웨이(County Galway)에 있는 카르스트지형이다.
화산 폭발로 생긴 석회암이 수 천년 동안 침식하여 형성한 거대한 카르스트지형이다. 고산지대의 식물과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특이한 환경으로 지질학자와 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끌며, 이곳의 바위 위를 걸으면 특이한 소리가 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네이버 지식백과 내용 중

돌, 바람, 물... 이 세 가지가 풍부한 황량하고 넓은 아일랜드의 땅을 보니 문득 제주도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고 보니 정작 제주도를 못 가본 지 20년도 넘었다).

고인돌(Poulnabrone) 약 5,000년 여 전 이 석회암 고원 위에 세워진 이 고인돌에서 30여구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한다.
고인돌(Poulnabrone)약 5,000년 여 전 이 석회암 고원 위에 세워진 이 고인돌에서 30여구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한다.최성희

점심 식사를 위해 한 작은 마을에 내렸는데, 편의점 하나 구멍 가게 하나 없이 식당이 달랑 두 개뿐인 데다가 운전기사가 추천해 준 곳은 자리를 잡기조차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그나마 좀 덜한 다른 곳으로 옮겨 한참을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려니 현금만 받는단다.


현금지급기조차 없는 이 작은 촌동네에서 '오갈 데 없는' 관광객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이 무슨 배짱인가 싶었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지갑에 마침 딱 식대만큼의 현금이 있었다. 다른 손님들 중에는 현금이 없어서 쩔쩔매는 이들도 있었다.

아침도 못 먹고 내내 굶은 터라 주어진 1시간 반 안에 어떻게든 요기는 해야겠기에 툴툴거리면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혼자라서인지 주문한 해산물 크램차우더가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지역 재료들만으로 만든 홈메이드 스타일이라는데, 해산물이 듬뿍 담긴 진한 치즈 맛의 뜨끈한 국물을 한 입 떠먹는 순간, 방금 전까지의 불만스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12세기에 세워진 코컴로 수도원(Corcomroe Abbey)에 있는 수녀들의 묘지
12세기에 세워진 코컴로 수도원(Corcomroe Abbey)에 있는 수녀들의 묘지최성희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일명 '해리포터 절벽'으로 알려진 모허 절벽(Cliffs Moher)에 도착했을 때 처음엔 그 규모에 깜짝 놀랬다. 넉넉 잡고 한 30분 돌아보면 될 정도의 벼랑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중간의 안내 표지판을 기점으로 양쪽에 펼쳐진 끝도 안 보이는 그 어마어마한 거리라니... 실제로는 왼쪽이 모허 절벽이고 오른쪽에는 유료입장인 오브라이언 타워(O'Brien Tower)가 있다.

기사의 안내멘트를 놓쳐서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기사에게 몇 시까지 돌아오면 되냐고 물으니 '파 피프틴(far fifteen)'이란다. 파 피프틴? 보통 4시 15분 전이면 quarter to 4라고 하거나, 4시 15분이면 15 past 4라고 할 텐데 대체 파 피프틴이 뭔지... 소심한 맘에 기사에게 재차 물어보기도 뭣하고 혼자 끙끙댔는데 알고보니 그걸 4시 15분(four fifteen)'으로 단박에 못 알아들은 건 나뿐이었다. 아이리쉬 억양은 역시 독특하다.

암튼 주어진 세 시간 동안 양쪽을 다 끝까지 밟아보기에는 불가능해보이기에 일단 주인공인 왼쪽부터 되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이곳에 도착하니 내내 흐렸던 하늘이 훨씬 맑아져 찌뿌둥했던 내 마음도 점점 개이고 있었다.

 해산물 크램차우더
해산물 크램차우더최성희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은 채 걸으면 걸을 수록 나타나는 장관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발길이 저절로 멈출 때까지 걸었다. 신기한 건 더블린과 골웨이에서 그렇게 추웠던 날씨가 바다와 절벽이 있는 이곳에선 오히려 따뜻하다 못해 아일랜드에 온 지 처음으로 등에 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왔다. 오늘 비로서 아일랜드의 참 멋을 느낀 듯했다.

 Cliffs of Moher2
Cliffs of Moher2최성희

 Cliffs of Moher3
Cliffs of Moher3최성희

한 80%쯤 왔다고 느꼈을 때 기어코 저 끝을 정복한 이들을 부러움으로 바라보며 방향을 틀기로 했다. 봐도봐도 놀라움과 경외심이 끝없이 샘솟는 이 비경... 계속 걷는데 뒤에서 한 한국인 남성의 말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미운 사람하고 한 번 더 와야겠다~."

왜??? 이번엔 오브라이언 타워가 있는 오른쪽으로 향했다. 왼쪽에 비해 거리도 짧아보이고 더이상 새로운 풍경은 없었지만, 이쪽에서 바라보는 모허 절벽은 여전히 장관이었다.

 경고판이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경고판이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최성희

적당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있다가 버스로 복귀하려고 내려오는 길에 한 여성이 아이리쉬 전통 민요를 부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오브라이언 타워(O'Brien Tower)
오브라이언 타워(O'Brien Tower)최성희

뜻밖에, 별 기대 없이 들은 그녀의 신비롭고 가녀린 목소리에 난 점점 빠져들었다.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는 표현이 간만에 뼈저리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왼쪽에 소년을 안고 있던 여성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감격에 겨워 그녀를 얼싸안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난 어느덧 한결 밝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투어버스에 올랐다.

골웨이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아일랜드의 변화무쌍하고 광활한 풍경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꼭꼭 담아놓으려 애를 썼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곳이기에...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맡겨놓은 짐을 찾아 바로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다시 더블린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일은 이 병 주고 약 준 나라를 떠나 영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아름다운 아이리쉬 민요
아름다운 아이리쉬 민요최성희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도 추후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일랜드 #골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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