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49)씨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숨진 경찰관 고(故) 정충길씨(사진)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는 40세의 젊은 나이에, 쉬는 날이었음에도 퇴직을 앞둔 동료를 대신해 경찰관으로 광주에 투입됐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정씨가 보내온 아버지의 생전 사진.
정원영씨 제공
그는 "아버지는 40세의 젊은 나이에, 쉬는 날이었음에도 퇴직을 앞둔 동료를 대신해 경찰관으로 광주에 투입됐다가 돌아가셨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들 삶이 완전히 파괴됐다.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밝혀지지 않는 죽음도 많구나'라며 포기하고 살아왔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씨의 아버지이자 고인이 된 정충길씨는, 최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나와 화제가 된 '5·18 버스 기사' 배용주씨가 당시 몰던 버스에 치여 숨진 경찰관 네 명 중 한 명이다. 당시 정충길 경사 외에도 강정웅, 이세홍, 박기웅 경장 등이 숨졌다.
배씨는 최루탄 연기 등으로 인해 앞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운전했다고 해명했으나, 당시 군 법무관이던 김이수 후보자로 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8년 뒤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앞서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씨는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내 차로 인해 희생자가 나왔는데 지금까지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못 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드린다"라고 경찰관 유족에게 사과했다.
정원영씨는 관련해 "그 (사과) 내용을 뉴스로 봤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그분이 아버지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번은 만나고 싶었다"라며 "아버지도 5·18때 숨진 피해자 중 한 명인데,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간 가해자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간 손가락질 받아온 아버지의 죽음,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었던 가족들 억울함은 어디서 보상받을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볼 때는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도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 중 하나"라며 "아버지께서는 5·18 숨은 영웅으로 불리는 안병하 당시 전남도경 경무관의 '총기 사용 및 폭력진압 금지, 시민 피해가 없도록 유념하라'는 지침에 따라 버스를 맨 몸으로 막다가 희생됐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원영 씨와 나눈 인터뷰 요지를 1문 1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아버지께서 5·18 당시 어떻게 돌아가셨다고 들었나."당시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아버지는 40세 젊은 경찰관이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사시는 성실한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소문에 광주에서 큰일이 벌어졌고, 공수부대가 사람들을 해친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경찰 전투복을 입고 집에 오셨더라. 얼마나 바쁘셨는지 집에 들러 신을 신은 채로 식사하시고는 광주로 떠났다. 그게 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동네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가 싶더니, 어머니께서 길 골목 끝에서 거의 실신 상태로 실려 오시는 거 아닌가. 그래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 상황이 흉흉해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가, 한 달 후에서야 4명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 아버지 친구분께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