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나 첫 경험은 자신의 손

[서평]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등록 2017.06.16 14:17수정 2017.06.1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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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한 척하거나 젠체하기보다는 툭 터놓고 정직하게 성을 사유해야 한다. 후미진 곳에서 호박씨 까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호박씨를 제대로 까면서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도록 내 삶을 흐뭇하고 싱그럽게 가꿔야 한다. 겉으론 시치미를 뚝 떼다가 뒤돌아서선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고는 입술 앙다물며 밤을 지새던 시대는 지나갔다. 무지 속에 더 이상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성을 고민하고 궁리하여 실천하는 만큼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350쪽

남자들은 모르는 게 있습니다. 여자들도 모르는 게 있습니다. 젖먹이 아이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지만 결혼을 해 엄마 아빠가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도 모르는 게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성입니다.


배가 부르도록 젖을 먹은 아기가 엄마 젖을 놓지 않고 만지작거리는 게 성과 연관 있다고 하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 많을 겁니다. 자식에게 유달리 집착하거나 심하게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키는 부모의 행동이 성 불만족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하면 이 또한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 많을 것입니다.   

다양한 학문으로 바라 본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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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 지은이 이인 / 펴낸곳 (주)을유문화사 / 2017년 5월 25일 / 값 15,000원 ⓒ (주)을유문화사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지은이 이인, 펴낸곳 (주)을유문화사)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성, 모르고 있어 정말 모르는 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은 결코 육체적인 것으로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성은 일상생활은 물론 정신과도 아주 밀접합니다.

성에 의해 태어나고, 성을 좇고, 성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으니 개인은 물론 인류, 인류 역사 자체가 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것이 성이지만 성은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다뤄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모르고 있는 게 허다합니다. 본능적인 성, 입으로 까발릴 수 있는 성이야 본능으로 알고 관능적으로 짐작하지만 성이 신경망처럼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신, 육체적 상관관계까지는 모르고 지내는 게 대부분입니다.


여자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남자 전용 대중목욕탕이나 화장실 내 풍경일 거라 생각됩니다. 남자들 대부분은 발가벗은 상대를 힐끔 바라 보기 일쑤입니다. 반드시 뭘 봐야겠다는 의지에서가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며 비교합니다.

그리곤 괜스레 의기소침해지거나 양양해집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남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한 남자만의 특성이 아니라 남자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 선택의 역사가 배경이라고 합니다.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많은 남성이 성기 크기와 길이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훨씬 길고 굵으며 탄력까지 갖춘 음경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지난 역사를 반영한다. 남성의 몸은 성 선택의 생생한 증거다. 남성의 성기가 지금의 형태가 된 건 우리 할머니 조상들이 온몸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280쪽

다시 말해 인류역사와 진화과정에서 성기가 작고 왜소한 남자보다는 크고 긴 남자가 여성(할머니의 조상)들로부터 성적으로 우선 선택된 배경이 있어 이처럼 본능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애인과 어땠는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였고, 어떤 남자와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걸 불평하는 성행위 평판이 이뤄지곤 했다고 합니다. 결국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평판나면 성관계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니 이래저래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불감증에서 오르가슴까지, 어느 누구도 첫 경험은 바로 자신의 손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빠지지 않는 게 첫 대상, 첫 경험입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어느 누구도 첫 경험은 바로 자신의 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으로 첫 경험을 한다. 물론 자신은 자위한 적 없다고 발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 '나'라는 의식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아기일 때 우리는 성기를 만지고 놀았다. 심지어 뱃속에서 탯줄이 달린 아기들도 손으로 성기 언저리를 만진다.' -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142쪽

성은 이처럼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것이지만 음습한 뒷이야기, 꺼내 놓으면 어느새 쉬쉬 거려야 할 이상한 뒷말 정도로 인식되다 보니 알려지면 좋을 것들조차 비밀처럼 취급되는 게 일상입니다.

혹자는 성을 이불속 이야기로 가두려하지만 성은 결코 이불속 이야기일 수만은 없습니다. 성은 개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정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신경망처럼 뻗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맛을 잃은 사람에게는 입맛을 잃어버린 원인을 알고, 맛난 음식을 만드는 조리법 등이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 불감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성 불감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을 알고, 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적재적소의 성관련 지식을 아는 것이 오르가슴으로 가는 첫 걸음, 행복한 성생활을 위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자문 했을 때, '성이 좋고, 궁금하고, 알고 싶고, 불감증 보다는 오르가슴이 좋다'고 답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좋아하는 성을 더 좋게 해 줄 지식, 모르고 있던 성을 알려 줄 지식, 불감증을 끝내고 오르가슴으로 갈 수 있는 성관련 지식을 결코 얇지 않게 얻게 될 거라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 지은이 이인 / 펴낸곳 (주)을유문화사 / 2017년 5월 25일 / 값 15,000원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 정신분석학부터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으로 바라본 성

이인 지음,
을유문화사, 2017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이인 #(주)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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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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