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나루 페스티벌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조수희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5년 동안 게스트하우스 일을 하며 한때 그 말을 곱씹었다. 내 기준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안심했지만, 불평 가득한 후기를 써 놓는 사람 때문에 마음의 상처는 날로 커졌다.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손님의 평가 대상이었다. 뜻이 통하는 지인이나 친구를 제외하고는 사람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만들기 피곤했다.
여행을 떠난 후에도 종종 사람 때문에 힘이 들었다.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내 신용카드를 들고 도망갔다. 쿠바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친구가 되고 싶은 것처럼 접근해서는 성희롱, 성추행을 슬쩍하고 계산서까지 내밀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고 싶은 나라였던 곳들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깨졌다.
미국의 본나루 록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남자에게 "안구건조증으로 아주 힘들어.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그는 도와주고 싶다는 말은 고사하고 "아프다고? 으하하"라고 비웃었다.
같은 페스티벌에서 만난 미국인 할아버지와는 1960년대의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에서 지미 핸드릭스의 공연을 본 일을 얘기하며 말을 텄다. 지미 헨드릭스의 공연을 봤다는 할아버지가 신기해 이런 말 저런 말을 나눴는데, 할아버지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네 예쁘고 큰 눈을 좀 보여 주겠니?", "한눈에 봐도 네가 저 여자애보다 가볍구나. 네가 이겼다"는 말로 성희롱을 하더니 내 손에 키스했다. 오 마이 갓(맙소사). 손이 썩는 줄 알았다.
혼자가 편했던 나, 착각이었다여행길에서 만난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대부분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여행 초반에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혼자 있는 게 편했다. 여행지에서 친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간 동안 혼자 밥 먹고, 혼자 이동하고, 혼자 놀았다. 사람에 지친 내게 오히려 그게 편했다.
막상 여행이 길어지니 혼자 있는 게 마냥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 지낼 때보다 몇 배는 더 외로웠다. 서울에서는 집에 가면 나를 반겨줄 가족과 반려견도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한밤중에 술 마시자고 불러낼 동네 친구도 있었다. 여행길에서는 새 여행지에 도착하면 나를 반겨주는 이는 숙소 주인 말고는 없었다. 그마저 대게 형식적인 환영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관광지인 모레노 빙하를 보러 간 날, 외로움과 비참함이 정점을 찍었다. 관광버스 스케줄 상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빙하 관광지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빙하를 보러 가는 주제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겨우 청바지, 발목 양말, 반소매 티, 방수 재킷, 목도리만 착용하고 갔다.
기온은 영상 1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고, 비까지 내렸다. 몸은 으슬으슬 떨렸는데 관광지에는 그 흔한 자판기 하나 없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가방에서 샌드위치,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를 꺼내 먹었지만,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추웠고, 배고팠다. 내 감정을 나눌 이 하나 없이 4시간을 혼자 있자니 눈 앞에 펼쳐진 빙하가 아무 의미 없었다. 빙하가 천둥소리를 내며 쪼개지든 말든 공원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 오디오 팟캐스트나 들으며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여행 5개월째인 지금, 가장 좋았던 곳으로 꼽는 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난 볼리비아다. 볼리비아에서는 그동안 인터뷰해보고 싶었던 한영준·김영미 부부를 만났다. 볼리비아에서 학교를 운영하던 그 부부 덕에 말도 안 통하던 볼리비아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주일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은 계속 내 끼니를 챙겨줬고, 아이들은 내게 놀자고 보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