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론, 어떻게 '금수저'의 배를 불리나

[뉴미디어기획] 시민사회가 '4차산업혁명'에 속지 말아야 할 이유 ②

등록 2017.07.02 16:16수정 2017.07.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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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관점을 드러낸다. 같은 현상을 일컫는 경우라도, '노동 유연화'라는 말이 사용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반면 '손쉬운 해고'는 노동자의 관점을 드러낸다. 사회 현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까는 누구의 관점을 채택할까의 문제이다. 

기술적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누구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만들고 유포한 주체가 누구인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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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의 트위터 페이지. 2016년 주제로 '4차산업혁명'을 내세웠다. ⓒ WEF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것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라는 민간단체다. 한국에서 '다보스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참석자들이 매년 스위스 다보스의 리조트에서 만나는 탓에 붙은 별명이다. 이 모임은 대외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우선 지지자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한국에서 '4차산업혁명 전도사'로 활약 중인 정재승 교수는 <4차산업혁명의 충격>이라는 책의 추천사를 썼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세계경제포럼이 뽑는 '젊은 글로벌 리더'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한다.

"일명 '다보스포럼'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문 영역에서 고민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서로 연대해 전 지구적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하면서 만든 제도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다소 불명확해, 어떤 설명이 '다보스 포럼'에 대한 것이고 어떤 설명이 '젊은 글로벌 리더' 제도에 대한 것인지 모호하지만, 그가 이 단체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곳으로 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는 더 나아가 이 단체가 특정 국가나 계급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전 지구적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주장한다. 

이 평가는 객관적일까? 


다보스, '살찐 고양이들의 사교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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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모습. ⓒ Ruptly


앞의 평가는 다보스가 표방해 온 활동 목적을 충실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 단체는 "정치, 재계,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지역, 산업에 관련한 주제를 논함"으로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좀 이상하다. 해마다 다보스포럼이 열릴 때면, 세계 각지에서 수백 명이 몰려와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선한 단체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포럼이 열리는 다보스는 해발 1500미터에 자리잡은 한적한 알프스 마을로, 시위대가 찾아오기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시위 참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 역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이들은 포럼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기는 커녕, 회의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경찰에게 끌려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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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에 항의하기 위해 도착한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 Surcinema


다보스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대단히 폐쇄적인 모임이다. 주연으로 초대받는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재계나 정계의 거물들이며, 이들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전달할 소수의 언론인과 대학 교수들이 조연으로 참여한다. 이 소수의 실력가들은 흔히 전용 제트기를 타고 철통같은 호위 속에서 호화 리조트에서 도착한다. <뉴욕타임스>가 다보스를 "상위 1% 중에서도 상위 1%에 속하는 최상류층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묘사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가끔 소규모 벤처 사업가도 초청장을 받는 드문 행운을 누리기는 하나, 그렇다고 참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회비가 7만 불, 한국 돈으로 8천 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을 위한 할인제도가 있지만, '할인가'가 3만 불(3천 5백 만 원)에 달한다. 사흘 간의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하루에 최소 천 만 원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아니다. 8천 만원 정도는 '껌 값'으로 보는 사람들도 다보스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펫이나 세계 최대의 회사 애플의 팀 쿡 등은 거듭되는 초청에도 단 한차례도 다보스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전임이었던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의 창립자인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도 다보스에 발을 끊은 지 오래며, 구색을 갖추기 위해 대리인을 출석시키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런던 시장으로 다보스에 참석했던 보리스 존슨의 말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며 다보스를 이렇게 평했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빨아주고 핥아주기에 여념이 없는 곳." 

이 모임을 한심하게 여기는 재계인사 역시 한둘이 아니다. 가령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 중인 '크라우드팩'의 창립자 스티븐 힐튼은 다보스의 주객으로 초청 받아 다녀왔고, 그의 부인도 자주 초청장을 받지만, 누구보다 혹독하게 다보스를 비판한다. 힐튼은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다보스는 돈 많은 백인들이 매년 별 생각없이 찾아와 불평등과 다양성을 논하는 곳이다. 탄소를 마구 뿜어대는 자가용 제트기를 줄줄이 타고 도착한 뒤 기후 변화에 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 곳에서는 거대기업들이 사회나 환경 문제에 대해 말뿐인 '해결방안'과 '행동계획' 따위를 내놓기도 하는데, 애초에 그 문제들을 만들어 낸 주범이 자신들이기에, 뭔가 하는 듯 연막을 피우려는 것이다." (<가디언> 2016년 1월 23일)

다보스에 일상적으로 참석 해 온 가수 '보노'조차 참석자들 앞에서 가벼운 '자학 조롱'을 던지기도 했다. 다보스를 "눈 (덮인 산) 속에서 모이는 살찐 고양이들 모임"이라고 부른 것이다. 다보스 참석자나 옹호자의 허리둘레와 상관없이, 다보스가 세상과 동떨어진 특권층들의 모임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다보스를 향한 촘스키의 비판

흥미롭게도, 다보스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해 본 일도, 경험할 수도 없는 미지의 영역을 토론의 주제로 삼기도 한다. '빈곤문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 2014년 다보스가 "경제 불평등"을 주제로 내세웠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꼬집었다. 

"경제 불평등 해소 방안을 논한다면, 고용을 가장 많이 하는 기업들을 초청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지만, 이들이 초청장을 받는 일은 없다."

다보스는 2016년 주제를 '4차산업혁명'으로 잡았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의 최고 경영자들이 외면한 모임에서 '4차산업혁명'을 논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제쳐놓은 채 갑부들이 모여 '빈곤'과 '불평등'을 다룬 마당이니,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닐 듯하다.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이 다보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 꼭 '잘난 척'이 싫어서는 아니다. 더 큰 이유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가장 잘 지적하고 있는 이는 노엄 촘스키이다. 그는 다보스를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연례 모임"이라고 말하며,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이런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런 모임들은 그저 사교적 모임에 불과합니다. 유치한 수준의 모임이라고 할까요? 이런 모임에서는 어떤 중대한 결정도 내려지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결정권자는 다보스에 얼굴을 비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은밀히 따로 만납니다." (인터뷰집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촘스키는 '다보스에 초청을 받는다면 가겠느냐'는 질문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답한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들이 으스대는 꼴을 내가 왜 봐야 합니까?"

'만나서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고 재차 묻자, 촘스키의 답변이 정곡을 찌른다. 

"내가 그들에게 달리 해 줄 말이 없습니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현상을 두고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금수저의 배를 불리는 '4차산업혁명론'

'동일한 현상을 두고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을 뿐이다.'

이 촘스키의 지적은 '4차산업혁명론'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4차산업혁명'은 혁신적 기술 변화를 지칭하는 객관적 용어가 아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지시하는 '명령어'에 가깝다. 

기술의 변화를 '산업혁명'으로 지칭할 때, 주체는 시민이 아니라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에서 <한겨레신문>에 이르기까지, '4차산업혁명'을 다룬 특집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라. 마치 입을 맞춘 듯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바로 '규제 철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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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론'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 시민사회가 개인정보의 무차별 수집과 악용을 우려할 때, '4차산업혁명론'은 기술의 진보와 경쟁력을 빌미로 탈규제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사진은 구글의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정책에 항의하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성명서. ⓒ Amnesty International


예컨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이 기업의 '빅데이터' 활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식이다. 사용자 정보를 무차별 수집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판과 소송에 휘말려 온 구글을 한국이 따라야 할 '모범사례'로 거론하기도 한다(최근 유럽연합은 구글의 불공정 혐의에 대해 3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나는 다보스가 사악한 단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참석자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좋은 의도로 만나고, 실제로 좋은 일을 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특정 국가, 특정 사회 계층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 지구적 기여'를 말하는 것은 기만 행위일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수 상류층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활동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음 글에서는 다보스가 왜 단순한 '사교 클럽'에 머물지 않고 한국 같은 나라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론'은 친기업, 반시민사회적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 담론에 내재된 '기술결정론' 때문이다. 기술은 시간이나 태풍처럼 다가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아니다. 기술 발전이란 의식적 선택의 연속이며, 이 과정은 언제나 특정 계층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친 칼럼을 통해, 기술이 결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아니며, 기술적 변화가 어떻게 재계의 이익이나 정치적 권력과 결탁 되어 있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아울러 기술의 흐름을 어떻게 시민사회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 살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빅데이터', '자율주행', '공유경제'의 환상과 허구성도 폭로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빅데이터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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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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