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9월 11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성미산 마을, 재미난 마을 등 85개의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서울시 마을지도를 보고 있다(자료사진).
유성호
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주민참여연구 발표 심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지자체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주민 참여 방식의 연구를 '작은 연구'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처음 '작은 연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직접 수행할 주민들의 부담을 덜고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작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작은 연구'라고 쉬이 받아들였던 게 자칫 연구자의 오만함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연구는 숙련된 연구자가 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마을을 연구하면서 마을 주민을 만날 때 스스로 이렇게 다짐하곤 한다. '아는 척하지 말자. 나대지 말자.' 처음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마을살이를 이어가는 주민들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 태도였지만, 마을 현장을 접하면서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에는 신념이 됐다.
연구, 아이들 놀이와 다르지 않다현장의 역동성과 방대한 정보에 압도돼 마치 문외한이 되는 느낌은 어떤 상황에서도 척척박사여야 하는 전문가에겐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런 기분이 싫어서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이 현장보다는 잘 정돈된 이론에 천착하고, 현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남들이 알아보기 어려운 건 소통을 방해하고 사회의 진보를 더디게 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뿌듯함의 근거도 아니고 경외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다.
외국의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연구가 '경외'의 대상인 듯하다. 심오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영역으로 존중받는 것 같다. 연구자로서 이런 존중이 싫지만은 않지만, 딱히 연구가 다른 일에 비해서 '더' 존중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연구가 특별히 더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심오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연구를 뜻하는 서구의 대표적인 단어는 스터디(study)다. 우리가 의무적으로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해온 익숙한 공부가 연구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와 관련된 어휘들을 추려보면 탐구, 궁리, 조사, 검사, 연마처럼 익숙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어렵다기보다는 다소 끈기를 요하는 일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심지어 놀이에도 궁리나 연마가 필요하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이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물론 끈기를 갖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막연히 연구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연구가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연구의 '대상'이 복잡하다면 연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에 대한 풍부함 경험을 지닌 숙련된 연구자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집단지성이나 인터넷 정보의 발달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만 다룰 수 있었던 연구 주제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물론, 그래 봐야 여러 전문 분야 사이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니 연구는 연구자의 몫이라는 전문가 진영의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북유럽 모델의 핵심은 공동체 속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