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8일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정부가 유엔실무그롭보고서에 답변하는 모습
국제민주연대
세계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데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유엔이 2011년에 통과시킨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이하 이행원칙)'을 만들고 이행원칙의 이행을 담당하는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2016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2017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참담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한국방문보고서'에는 유성기업과 현대중공업 하청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대기업의 원하청 문제가 드러나 있는데 실무그룹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공급망에 대해서 1차 협력업체에 대해서만 원청의 행동강령을 전달하고 준수를 요구하는 정도로 이해해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1차 협력업체 외에 공급망에 대한 감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청들이 하도급법 제18조에 명시된 부당한 경영간섭의 금지를 들며 1차 공급업체 이하의 공급업체에 대한 개입이 법으로 제한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조항은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아님을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현대자동차가 실무그룹에게 유성기업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안은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설명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유엔 실무그룹에게 거짓말을 했음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현대자동차가 직접 유성기업을 포함하여 하청업체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설령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지 않는 공급망 내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원청이 책임지고 예방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 들어간 부품 하나의 원료구입에서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국내외를 가리지 말고 현대자동차가 공급망 전반에 대해서 인권침해 여부를 점검하고 방지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고 평가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현대자동차가 이런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라는 것이다. 새삼 환기 하자면, 유엔에서 말하고 있는 인권에는 노동3권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실무그룹이 어용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그리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하청계약 해지, 노동쟁의가 발생한 하청업체 및 협력업체 노조에 대한 고소 등의 문제를 소개하면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방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업의 재정손실을 노동자들에게 부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의 법률과 제도들은 모두 국제 인권기준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대기업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국제인권기준들을 무시하고 있는 상황을 조장한 것은 정부의 기업 편향적인 법적용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태도는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유엔에서 계속되고 있다.
유엔 실무그룹의 보고서가 발표된 지난 6월 8일, 한국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현대자동차의 유성기업 개입에 대해 공소제기를 한 것을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의 근거라고 제시한 것이다. 증거가 드러났음에도 정부가 기소도 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한 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싸워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해서 사과 한마디 없었던 정부였다. 이런 정부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소비자들과 한국기업과 관련된 지역주민들은 물론이고, 한국기업의 노동자들은 원청과 하청 가릴 것 없이 기업들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해도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언제나 기업의 편에서 정부와 사법제도는 운영되어 왔으며, 이런 과보호에 익숙한 한국기업들은 해외에서도 인권침해를 저지르면서 삼성과 포스코, 대우인터내셔널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국제사회의 각종 캠페인의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하이디스나 아사히글라스 같이 외국기업들이 먹튀를 하고 정리해고를 하는데도 정부는 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대처도 못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을 보호와 투자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동안, 한국기업의 경쟁력도 결과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국내외 피해자들만 양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서부터는 국제기준에 맞춰나가야문재인 대통령이 G20정상회의에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두고,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유엔은 강 장관을 빼앗겼다"라고 농담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유엔 무대에서 활약하던 강경화씨를 문재인 정부가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한국정부가 과거와는 달리 국제사회의 기준에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신호를 국내외에 주고 있다. OECD 회원국인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의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인권기준을 선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국가가 된지 오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환대에는 이제 한국이 제대로 국제사회의 인권기준들을 준수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
G20 정상회의 성명은 각 국가들이 기업의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인 인권정책계획의 수립은 국제사회의 의무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은 2007년부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5년 단위로 수립하고 있고 이제 3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여 이미 14개 국가가 기업과 인권에 대한 별도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작년까지 논의되던 기업과 인권에 대한 별도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여부는 탄핵을 거치면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이며,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도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유성기업 개입에 대해 현대자동차를 기소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국회와 사법부를 포함하여 범정부차원에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인식하고, 이에 맞추어 기업들로 하여금 국내외 공급망까지 포괄하여 인권존중 정책을 펴나가게 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유엔과 OECD에서 한국기업과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이에 대해 정부가 왜곡된 답변으로 비판을 모면하는 과거의 잘못된 행태가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과거의 정부들이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문재인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칭찬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새 정부의 인권과제로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부터라도 노동조합 및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들까지 포괄하여 어떻게 한국기업이 국제기준에 맞춰 운영되도록 할지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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