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한번쯤 손사래쳤을 사람들... "서럽기도 하죠"

[노동자의 여름 ③] 홀대 받고 단속 쫓기는 전단 배포 아르바이트의 삶

등록 2017.07.23 20:21수정 2017.07.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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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줄줄 흐르고 목이 타들어 갑니다. 노동자들은 오늘 하루도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버텨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느덧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선 지금, <노동자의 여름> 기획은 노동자들의 ‘여름 나기’를 그려냅니다. [편집자말]
구름이 자욱하게 껴 햇볕이 내리쬐진 않았지만, 높은 습도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나던 지난 16일. 한여름 무더위도 혜화역의 활기를 꺾을 수는 없는 듯하다. 소위 대학로로 불리는 이곳, 수많은 인파가 오간다. 끊이지 않는 발걸음 사이로 커피숍·화장품점에서 흘러나오는 최신가요가 스쳐 지나간다.

연극 광고가 가득 메워진 혜화역 지하통로를 따라 1번 출구로 나오니 선캡을 쓴 채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전단 배포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바로 그들이다. 오른쪽 왼쪽 바쁘게 움직이는 전단 배포 노동자 중에는 김혜미(61, 가명)씨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미장원 전단이 한 뭉치 들려 있었다.

김혜미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오후 4시부터 밤 7시까지 혜화역 1번 출구 주변에서 일한다.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기 힘든 여름, 그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중장년 가난한 여성'의 일자리... "살아야 하니까"

 선캡과 쿨토시로 무장한 전단 배포 노동자들은 주변의 '빈손'을 찾고 있었다. 혜화역에서 만난 그들.
선캡과 쿨토시로 무장한 전단 배포 노동자들은 주변의 '빈손'을 찾고 있었다. 혜화역에서 만난 그들. 유동화

"당뇨에 걸린 지 35년 정도 됐어요. 집에만 있으니 건강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전단 배포일을 시작했어요. 생활비를 벌어야 하거든요."

당뇨병을 앓고 있다면,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만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친지도 없고, 딱히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돈을 벌 수 있는 기술도 없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는 매우 국한적이다. 결국 그는 전단 배포일을 택했다. 전단 배포는 그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한 시간에 1만 원 벌어요. 꽤 쏠쏠해요. 하루에 3시간 일하니까 3만 원 버는 거죠."


1일 3만 원. 김혜미씨 삶의 버팀목이다. 전단 배포일은 투병하느라 늘 집에만 있었던 그에게 '세상 사람들과 접촉하는 통로'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그는 매일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대하거나 귀찮다는 듯 흘겨보고 지나가는 시선과 마주한다. 김혜미씨의 말에 따르면 이 동네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이의 상당수는 '50·60대' '가난한' '여성'이라고 한다.


"올해 8월이면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돼요. 처음에는 전단을 건네는 저 자체를 무시하는 사람이 많아 속이 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3년 정도 지나니 일상이 되어버려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졌어요. 세월이 흐르니 전단 받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성도 어느 정도 보이더라고요. 이런 일 하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거죠. 때론 서럽기도 해요."

3시간 동안 김혜미씨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전단은 하루 평균 500장. 일을 하다가도 팔이 쉽게 저려온단다. 여름이면 더위에 처지고, 겨울이면 추위에 손끝이 시리단다.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세 번의 여름과 세 번의 겨울을 길바닥 위에서 버텨왔다.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단속 무서워요... 떳떳하게 일 못하죠"

 뚝섬유원지에서 만난 전단 배포 노동자.
뚝섬유원지에서 만난 전단 배포 노동자. 유동화

같은 날, 뚝섬유원지. 주말을 맞아 한강을 찾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과 나무 아래 그늘이 끈적한 날씨에 지친 이들을 달래준다. 이곳에도 열심히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 누런 낯빛에 검버섯이 자리한 얼굴을 한 장년들.

원색 등산복을 입고 햇볕을 가리기 위해 팔토시로 무장한 이순자(65, 가명)씨를 만나봤다. 여기저기 손이 빈 사람들을 찾던 그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 전단을 쥐어주기 위해 뛰었다. 그는 전단 배포일에도 '제철'이 있다고 설명했다.

"4월부터 10월 말까지만 여기서 전단 배포일을 할 수 있어요. 겨울에는 추워서 사람들이 한강을 찾지 않고요. 여름엔 낮에 더워서 사람들이 유원지에 잘 오지 않아요. 장사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죠."

그는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근무한다. 주말에는 많으면 전단 1000장을 뿌린다고. 대개 뚝섬유원지 인근 가게에서 파는 치킨과 피자 등 배달음식 광고다. 하지만 뚝섬유원지에 수영장이 들어서고 올해 6월부터 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장사가 힘들어졌단다.

"수시로 단속이 떠요. 생계가 달렸으니 그냥 피해 다니면서 일하는 거죠. 설령 단속에 걸려도, 훈방 조치로 끝나요. 시급 7000~8000원 정도 받고 일하는데 벌금형이 나면 힘들게 번 돈을 날리게 되는 거니까 무서워요. 떳떳하게 일하지 못한다고나 할까요."

웃어야 한다, 웃어야 한다

 전단 배포 노동자는 '50·60대 가난한 여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단 배포 노동자는 '50·60대 가난한 여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동화

그렇다면 신고는 누가 하는 걸까. 수영장 안 음식점 관계자들이란다. 광고 전단을 뿌리면 수영장 음식점이 피해를 입는다고. 이씨를 비롯한 전단 배포 노동자들의 죄목은 '공공장소 광고물 무단 부착'이다. 경범죄 처벌법 제2장 3조 9항에 따라 광고물 무단 부착 등의 행위는 규제를 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뚝섬유원지 인근 배달음식점은 한강 방문 손님을 놓치면 장사를 할 수 없다. 배달음식점이 광고 전단 배포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후텁지근한 날씨인데도 이씨는 인터뷰 중 연신 웃어보였다. 힘들 법도 할 텐데 말이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단 돌리는 일도 감정노동이 필요해요. 모르는 사람 손에 전단 건네주고 음식 주문하라고 권하는 건데 찡그릴 수는 없잖아요. 무시하고 지나치고, 손사래 쳐도 웃어요. 웃어야죠."

밤 10시가 넘으면 한강을 찾은 시민들은 하나둘 유원지를 떠난다. 사람들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는 버려진 전단만 남는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광고지를 하나하나 줍는 작업을 1시간 정도하면 그들의 고단한 하루도 끝난다. 퇴근하는 그들이 전단을 나눠줄 때처럼 웃음을 머금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들의 어깨가 꽤나 처져 있었다는 게다.
#전단지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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