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대화하자는 문재인, 어깃장 놓는 트럼프

[주장]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 제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등록 2017.07.20 18:34수정 2017.07.20 21:49
11
원고료로 응원
한국 정부가 지난 17일 북한에 대해 군사 당국자 회담 및 적십자 회담을 제안했다. 이는 현 정부 들어 최초의 공식적인 대북한 대화 제의다. 이에 대해 백악관의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다음날 "지금은 대화 조건에서 멀다"라면서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면서 논평을 거부했다.

지금 미국은 북한의 ICBM급 화성-14호 시험발사(7월 4일)를 빌미로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원유공급 제한이나 항공 및 해상 운송 제한, 나아가 필요할 경우 군사력 사용까지를 포함하는 초고강도의 대북 제재를 채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여의치 않자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 발동을 위협하면서 '대북 원유공급 축소(또는 중단)'에 나서라고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 행보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그럼으로써 미국의 대북 전략 틀 안으로 한국 정부를 묶어두려는 속셈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오바마 정권의 실패한 전철을 밟으려는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화 제안에 트럼프 정부가 어깃장을 놓고 나섰다. 2016년 DonkeyHotey가 그린 일러스트.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화 제안에 트럼프 정부가 어깃장을 놓고 나섰다. 2016년 DonkeyHotey가 그린 일러스트. Flickr

트럼프 정부가 '최대 압박'을 내세우는 자신의 대북 전략만을 고집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바라는 나라들의 입장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태도는 온당한 것인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전략(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은 그것이 시행된 지 벌써 4개월 이상 지났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은커녕 되레 더욱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난 7월 4일 북한의 ICBM급 화성-14호 시험발사의 성공이 그 뚜렷한 증거다. 이것은 트럼프의 대북 전략이 제재나 압박을 통해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그간의 오랜 교훈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이 이런 정책에 응하기도 어렵고, 또 성공할 수도 없다. 이 점에서 하루라도 빨리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게 북한 핵문제 해결의 요체다.

중국과 EU가 한국 정부의 이번 대북 제안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일본 정부가 최초 반대 입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의 대북 압력강화 방침과 모순되지 않는다"라면서 지지 입장으로 선회한 것도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대북 제재와 압박만 횡행하는 현재의 상태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및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대 북한 제재와 압박에만 몰두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미국의 태도야말로 지금 단계에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정부의 이번 대북 대화 제의는 북한 핵문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바란다면 북한과 미국이 접점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북한의 공식 입장도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폐기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ICBM 발사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조선중앙TV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ICBM 발사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연합뉴스

북한은 "우리가 강위력한 억제력을 갖춘 것도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서 한반도전역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었다"(2016년 7월 6일 정부 대변인 성명)라고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 철폐 및 검증, 핵 타격 수단 반입 중단 보증, 핵 사용 위협 중단 약속, 주한미군철수 선포 등을 제시한 적도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22만 ㎢밖에 안 되는 작은 한반도 땅에 그런 위험한 무기는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고 힘든 선택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2017년 6월 21일 인도위성방송 인터뷰)라는 계춘영 주 인도 북한 대사의 발언도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돼 북한의 생존위험이 없어진다면 핵무기 포기가 가능함을 확인해준다.

미국 내 일부에서는 '북핵 제한적 보장' 주장(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자는 주장이어서 현실성도 없고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지역을 핵 확산과 핵 군비경쟁의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물론 남한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한반도 비핵화 목표에 대한 미국과 북한,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6자 회담국의 입장은 같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신뢰 문제다. 미국도 북한도 신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미국의 선북한 비핵화와 북한의 선대북 적대정책 폐기(선평화협정)가 대립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병행'이 해답이라 할 수 있다.

남북 군사회담 성공의 요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교착돼 있는 상태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갈 필요가 있다.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은 의제를 특정하지 않은 채 21일까지 북한 측에 회답을 줄 것을 요구했다.

7·6 베를린 구상에는 7월 27일 정전협정기념일을 맞아 휴전선 일대에서의 남북간 적대행위 중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을 위한 남북 대화 등의 4대 실천과제가 담겨있다.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이 열린다면 북측으로서는 한미연합연습 문제를 의제로 삼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이다. 미국이 한미연합연습의 계획 및 실시권한을 포함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어 미국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선언 채택에 앞서 남한 및 미국과 북한은 1992년 팀스피리트훈련 중단에 합의했고,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채택을 위해 1995년 팀스피리트훈련 중단에 합의한 전례가 있다. 한미연합연습 중단과 북한 핵미사일 동결 방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 정립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미 간 논의 과정에서 제기될 이견과 갈등에 대처할 수 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올바른 여건 하에서 북한과의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는 조건부 대화론이나 "북한이 핵도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과 같은 '제재와 압박 불가피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 행보에 나서려는 정부의 발목을 스스로 잡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덫'에서 벗어나야

 지난 달 30일 오전(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지난 달 30일 오전(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가깝게는 이번 남북회담 제안, 더 멀리는 한반도 비핵 평화구상과 이를 더욱 구체화한 7·6 베를린 구상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벽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주의적 태도가 잘 드러난 것이 이번 숀 스파이서의 발언이다. 지난 6월 30일 발표된 한미정상의 공동성명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에 대한 남북한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재인 대통령 열망을 지지했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라고 적고 있다.

이 공동성명을 근거로 삼는다면 이번 한국 정부의 대북한 회담 제안은 두 정상 간 합의에도 배치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대북한 제안에 앞서 미국과 사전에 협의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대북한 회담 제안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태도는 자기중심적이고 패권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자신은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으면서 동맹국을 구속하는 수단쯤으로 여겨온 한미동맹에 대한 태도와 같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자기중심적인 트럼프 정부의 태도에 주눅이 들거나 휘둘려서는 안 된다. 만약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처럼 미국의 압력에 눌려 미국 쫓아가기에 바쁘다면 이는 촛불 민심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트럼프 대북 전략 #남북회담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4. 4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5. 5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