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정책 생각해주길

15년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청각장애 엄마의 어려움들

등록 2017.07.26 18:02수정 2017.07.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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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우리나라의 장애가족지원은 거의 장애아이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부모가 장애이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 장애부모의 자녀들을 위한 지원과 정책은 왜 눈에 띄지 않을까? ⓒ pixabay


"선생님 죄송해요! 아이가 아파서 내일 수업 출석을 못해요."
"어디가 아파요?"
"병원에 가서 종합검사를 받으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아이가 밥을 안먹고 말하지도 웃지도 않고 학교도 안 가요."
"사춘기 성장통 같아요. 억지로 뭐 하려고 하면 탈나니 가만히 지켜보세요."


사춘기 아들이 있는 장애부부에게서 결석한다고 미리 연락이 왔다. 청각장애인인 나는 학습과 교육생 관리를 위해서 사전문자 연락제를 만들었다. 누군가를 통해 전화를 하거나 또는 직접 사무실에 전화를 하는 것보다 번거롭기는 해도 직접적인 소통이 서로의 친밀감과 정확한 사정파악에 훨씬 도움이 된다.

연락을 한 장애부부 중 아이엄마는 아기때 뇌를 다쳐서 몸의 왼쪽이 마비되었다. 얼굴 안면근육마비로 말을 못하고 침을 통제 못 하며 왼손, 왼쪽 다리도 쓰지 못한다. 내가 주성대 사회교육원에서 첫 강의를 할 때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그때 미혼의 30대 중반이었으나 지금은 사춘기 아들을 둔 50초입이다. 그때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충북여성장애인연대 창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못 느끼고 그냥 강단생활을 유지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녀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쓰고 싶다는 엄마, 정, 사랑, 희망 이런 것들을 쓸 줄 모르는 비문해였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장애인이 나와 비슷하거나, 비문해는 할머니들이 대다수인 줄 알았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내게 그녀는 나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좀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계기가 되어 여성장애인인권단체 창립의 일에 뛰어들고 그녀는 집에서 가사만 하고 살다가 끊임없는 나의 충동질(?)의 영향으로 독립과 자립을 하였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단체의 수장을 13년간 하면서 재정이 걱정없이 운영되게 되자 미련없이 물러났다. 그리고 일반인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일을 한 나는 그녀와 연락이 한동안 끊겼다. 

간간이 그녀가 내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장애야학교에서 검정고시도 공부하고 연극동아리도 하는 소식을 듣고 잘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작년 새로운 기관에서 내가 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가 찾아왔다. 이전처럼 다시 내게 붓글씨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혼자였던 그녀가 이번에는 남편을 같이 데리고 왔다. 그렇게 해서 작년부터 매주 그녀는 남편과 함께 주 1~2회 꾸준히 학습한다. 그런 그녀의 살아가는 삶의 모양에서 나는 말을 할 수 없어 애끓는 여성장애인만의 모성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며 마음이 아프다.

그녀는 나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그리고 나의 아이들의 성장모습에서 희망과 힘을 얻는다고 한다. 나는 아직 모든 것을 극복한 과거형이 아니라 극복 중이다. 진행형이긴 하지만 중증 여성장애인들이 서로가 길이 되어 바라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녀는 말을 못한다. 한쪽 팔로 수화를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수화를 모른다. 그래도 부부는 눈빛으로 통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입과 팔이 되어 젖먹이 두 아이를 잘 거둬들이고 키워내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부모에게도 어려운 아이들의 사춘기 갈등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 것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가 힘들어지고 그 힘듦의 무게를 나누어주어야 하는 엄마와 소통이 안 되어서 더 힘들어 한다. 이를 지켜보는 엄마는 괜시리 아이에게 미안해지고 어쩔 줄 몰라 난감해 한다.

부모가 장애이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 아이, 지원과 정책 눈에 띄지 않아

중증여성장애인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장애로 인해 걸림이 되고 갈등이 발생하는 이 문제는 나도 직접 경험해 보아서 체감이 된다. 내 아이가 우울증 초기에 걸려서 학업유지도 힘들어 외국어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고졸검정고시를 준비할 때가 있었다.

한창 어려울 때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 및 가족의 힘만으로 총체적 난국을 풀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택한 방법은 청소년지원센터의 담당선생님이나 신경정신과 의사와 대화하여 자문을 얻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성장애인상담소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창 아이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났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나라의 장애가족지원은 거의 장애아이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부모가 장애이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 장애부모의 자녀들을 위한 지원과 정책은 왜 눈에 띄지 않을까?

중증의 지체장애인엄마가 아이를 대신 안아주거나 업어주지 못하는 어려움을 위해 장애활동보조서비스제도가 시행되고 말을 잘 못 하는 장애아이를 위해 장애아동바우처 언어치료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말을 하지 못 하는 장애엄마의 육아와 모성지원을 위해서는 딱히 이렇다 할 지원이 없다.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나는 충북도청에 청각장애엄마를 대신하여 유아기와 아동기 자녀에게 언어교육과 생활교육을 지원하는 정책을 제안하기도 하여 작년에 선정되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현실화 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말을 못 해 유아기와 아동기 또는 사춘기 아이들의 어려움에 대해 사회에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내지 못한다고 해서 도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고 지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청각여성장애인식개선 #여성장애인모성권 #장애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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