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이 피는 시간

무더위 한풀 꺾이자 밥꽃 피기 시작한 들판

등록 2017.08.15 19:59수정 2017.08.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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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삼복더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은 움직이기가 싫을 정도로 몸이 무겁다는 뜻입니다.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더위도 절기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입추가 지나고부터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많이 수그러든 느낌입니다.


어느새 '가을의 전령사'라는 풀벌레소리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청아한 풀벌레소리에 실리는 선선한 기운이 아침저녁으로 파고듭니다. 가을이 멀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들녘엔 벌써 가을냄새가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들길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들길전갑남

녹색들판은 싱그럽습니다. 언제 봐도 눈이 시원합니다. 들길 자전거여행은 늘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뭘 발견한 걸까요? 앞서 달리던 아내가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여보, 여기 저기 벼 이삭이 패기 시작했어요!"
"그래? 당신 아니면 그냥 지나칠 뻔했네!"
"와! 어느새 나락 모가지(벼 이삭)가 올라오고 벼꽃이…"


 막 벼꽃이 피어나는 벼논.
막 벼꽃이 피어나는 벼논.전갑남

벼 이삭에 꽃이 피어났습니다. 벼꽃이 핀 것입니다. 벼꽃은 관찰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벼꽃이 피는 것은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뜸하게 들에 나온 농부는 자기 논에 이삭 패는 것도 모르고 지나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벼도 분명 꽃이 핍니다. 벼꽃에서 수정이 이루어져 귀한 낱알이 영급니다. 벼 낱알은 우리의 소중한 식량인 쌀이 되는 것이구요.


벼꽃이 참 신기합니다. 하얀 가루가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자잘한 벌레 같은 게 숱하게 붙어있는 것 같기도.

아내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도회지 사람들 중에는 벼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겠죠?"
"볼 기회가 적으니 그럴 것 같아."
"그럼, 당신이 벼꽃을 찍어 기사 한번 내보지?"
"그럴까? 근데 내 휴대폰이 제대로 담아낼지가…"

나는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벼꽃을 찍으려는데 바람에 벼 이삭이 흔들흔들 춤을 춥니다. 초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벼꽃의 놀라운 신비

우리는 꽃이 피는 것을 개화(開花)라고 하고, 벼가 꽃피는 것은 출수(出穗)라고 표현합니다. '출수'의 '수'는 '이삭 수(穗)'자를 씁니다. 벼에 이삭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벼꽃의 존재가치보다는 벼 이삭이 고개를 든 것에 방점을 두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벼꽃은 6개 수술, 1개 암술로 이루어졌습니다. 벼꽃은 곤충들이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것과는 달리, 자기 스스로 수분(受粉)을 합니다. 이른바 자가수분(제꽃받이)를 하는 것입니다.

 벼꽃은 순식간에 피어난다고 합니다.
벼꽃은 순식간에 피어난다고 합니다.전갑남

 벼꽃의 신비. 벼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벼꽃의 신비. 벼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전갑남

벼꽃의 수분과정에는 정말 오묘한 자연의 이치가 숨어있습니다. 위쪽으로 향한 수술이 아래로 고개를 숙일 즈음, 이삭 껍질은 수술이 암술에 닿기 쉽도록 살짝 입을 열어 수정을 돕습니다. 수정이 끝나면 닫힌 벼 이삭 안에서 한 톨의 귀한 알갱이가 영글어갑니다.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연의 놀라운 신비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이른 벼에서 벼꽃이 피어 나고, 벌써 고개를 떨군 벼논이 보입니다.
이른 벼에서 벼꽃이 피어 나고, 벌써 고개를 떨군 벼논이 보입니다.전갑남

 가을을 앞둔 벼 이삭의 아름다움
가을을 앞둔 벼 이삭의 아름다움전갑남

벼꽃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크기도 아주 작습니다. 꽃이 핌과 동시에 벼꽃은 2시간 이내에 수분이 이뤄집니다. 벼꽃의 일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잠시 피었다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벼 이삭 1개에는 보통 90개에서 150개 정도의 낱알이 달립니다. 낱알 모두가 꽃이 피기까지는 3일에서 5일 정도 걸립니다. 아주 짧은 기간입니다. 지켜보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자기 일을 해내는 셈입니다.

 가을을 앞둔 들녘. 멀리 마니산이 보입니다.
가을을 앞둔 들녘. 멀리 마니산이 보입니다.전갑남

아내와 나는 다시 벼꽃 피어나는 들길을 신나게 달렸습니다. 수정이 이미 끝난 논에서는 고개 숙인 벼 이삭들의 색깔이 희미하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벼꽃이 주는 의미를 서로 나눴습니다.

"벼꽃은 비록 하찮아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지?"
"그럼! 우리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꽃!"
#벼꽃 #벼이삭 #농촌마을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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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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