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역습, 또 경고를 무시할 것인가

[주장] 공장식 축산방식, 이제는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등록 2017.08.17 10:10수정 2017.08.17 10:10
1
원고료로 응원
학창 시절, 음악 과목의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던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옆 자리의 내 짝은 집에서 계란을 하나 들고 왔다. 앞니로 톡톡 깨뜨린 후 단숨에 꿀꺽 삼키고는 성악가라도 되는 양 진지하게 발성연습을 하곤 했다. 계란의 힘이었는지 제법 그럴듯하게 노래 한 곡조를 뽑아냈던 것 같다.

하긴 내 어린 시절엔, 갓 지어낸 뜨거운 쌀밥에 날계란 하나를 깨뜨려 넣고 참기름 한 방울만 떨궈도 그 고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우리 집에도 닭이 한 마리 있으면 매일 계란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턴가 닭이 있는 집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냉장고의 맨 윗칸은 언제나 계란이 가득했다. 하지만 날계란을 꿀꺽 삼키거나 밥에 비벼먹지 않게 된 지도 꽤 오래다. 공장식 양계장에서는 항생제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계란을 날로 먹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들 했다.

인류의 잔혹함은 어디까지 일까

a

영화 <옥자> 스틸컷 ⓒ (주)NEW


봉준호 감독의 2017년 작 <옥자>의 글로벌 식품기업 미란다 코퍼레이션은 이른바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추진한다. GMO(유전자조작)을 통해서 생산된 초대형돼지들은 인위적이지 않은 전통방식으로 길러진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세계 각지의 우수축산농가에 보내진다.

그 중 한 마리가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미자네 집에 보내지는 '옥자'이다. 옥자는 사실 돼지라기보다는 하마나 코끼리에 가까워 보이는데, 또 하는 짓은 영락없이 개를 닮았다. 산속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주인 미자를 몸을 던져서 구해낼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고, 마치 주인의 말을 실제로 알아듣는 듯한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미자와 옥자의 모습은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아주 오랜 친구와도 같아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미란다 코퍼레이션은 뉴욕에서 열릴 '수퍼돼지 컨테스트'에 참가시킨다는 명분으로 미자도 모르게 옥자를 끌고 간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용감한 미자는 옥자가 끌려간 미란다코퍼레이션 서울 지사를 혈혈단신 찾아가고 이 과정에서 비밀동물보호단체 ALF의 작전에도 얽히게 된다.

미자는 우여곡절 끝에 초대형 공장식 도축장에 갇혀 있는 옥자를 찾아낸다. 그 곳에는 수백 마리의 '슈퍼돼지'가 울부짖으며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어미 돼지 한 마리가 자신의 새끼를 우리 밖으로 힘겹게 밀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새삼 우리 인류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했다. 돼지가 지능이 낮다고 해서 본능적인 모성조차 없을 것인가?


물론 먹이사슬(food chain)은 자연의 섭리이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작동방식이다. 그런데 우리 인류가 약 2백여 년 전부터 가축들을 대량으로 울타리에 가두어 기르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때부터 고기의 생산량 증가를 위해서 동물들의 교배와 번식에 인위적인 개입을 시작한다. 그리고 20세기 초반부터는 사료전환 효율, 사육밀도, 또 유전적 선택과 교배를 통해서 그 성장률을 극대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과 소의 사체를 갈아서 사료로 먹이기도 하고 성장촉진제 또는 항생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돼지는 좁은 우리에 잔뜩 몰아넣고 키우고, 닭은 마치 선반을 연상시키는 이른바 배터리 케이지에 가둬놓고 기른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살충제 계란 사태는 바로 이러한 축산방식에서 기인한다.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다

a

살충제 계란 파장이 전국으로 확산 중인 16일 강원 원주시의 한 양계장에서 직원들이 달걀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이 농장은 전날 국립농산품질관리원의 검사를 통과해 달걀 출하 작업을 재개했다. ⓒ 연합뉴스


닭 한 마리당 할당된 공간은 A4용지 한 장의 크기에 미치지 못한다. 닭은 본능적으로 흙에 몸을 비비며 몸에 달라붙은 진드기 등의 해충을 떨어낸다. 하지만 빽빽한 닭장에 갇혀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양계장의 닭들은 그 고통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온 몸에 살충제를 뒤집어 쓴 닭이 낳은 계란이 친환경이라는 증명서가 붙어 출하되고, 우리는 매일 그 계란을 사다 먹는다. 그러다가 구제역 혹은 AI같은 질병이 발생하면, 우리 인간의 안전을 위해 가축들을 산 채로 땅에 파묻는다. 지금은 출시된 계란의 폐기에 그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 이 수많은 닭들을 또다시 대량으로 매장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동물협회 회원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모든 동물의 공장식 사육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이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건강을 넘어 미래의 생존 여부와 직결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분히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지만, 우리 인간이 무슨 권리로 동물들의 교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대량으로 도축할 수 있는 것인지 이제는 한번쯤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 우리의 탐욕은 그 한계를 넘고 있다. 계속되는 일련의 경고를 또다시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이제 동물을 포함한 자연의 역습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그다지 많은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살충제 계란 #옥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단독] 순방 성과라는 우즈벡 고속철, 이미 8개월 전 구매 결정
  3. 3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4. 4 김용의 5월 3일 '구글동선'..."확인되면 검찰에게 치명적, 1심 깨질 수 있다"
  5. 5 빵집 갈 때마다 불편한 마음, 이걸로 해결했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