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안된다고 새벽에 욕설, 그래도 진짜 문제는..."

[계속되는 노동자 살해, 과연 진상 고객만 문제인가? ④]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

등록 2017.08.22 21:23수정 2017.08.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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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의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할까?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인 만큼 노동자들의 삶도 그럴까?

지난해 9월 27일 SK브로드밴드 의정부센터 인터넷 설치기사가 비 오는 날 전신주 위에서 작업하다 추락해 하루 만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분명 사고가 예상되는 작업이었지만, 당시 센터팀장은 실적을 압박하면서 작업을 강행했다. 결국, 죽은 것은 전신주 위에 올랐던 노동자였다.

죽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월 16일 KT 자회사 KTs 직원은 인터넷 수리를 하던 중 흥분한 고객에게 살해당했다. 날씨뿐만 아니라 고객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설치·수리 기사노동자는 위태롭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7월 25일 SK브로드밴드 자회사 '홈앤서비스'에서 근무하는 조정욱씨를 만나봤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실적 압박'"

"일반적으로 개통, 멀티, 장애(수리)파트가 있는데 저는 장애 업무를 맡고 있고, 통신업계에서 일한 경력은 14~15년 정도 됐습니다. 전에는 한국통신 KT에 있었는데, 입사한 해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일하는 걸 물어보기에, 전봇대에 올라가는데 오늘 바람 부니 휘청휘청했다는 얘기를 했죠. 아내가 그 얘기 듣고 직장을 옮겼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로 옮기게 됐죠."

인터넷·TV 설치, 수리 노동자들은 대기업 원청 소속이 아닌, 원청과 위탁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소속이다. 거기서도 협력업체 소속과 개인 도급 방식의 형태가 혼재돼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느끼는 가장 근본적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실적 압박이 문제예요. 접수가 취소된다거나 하면 마이너스 패널티를 줘요. 저희는 성수기, 비성수기가 따로 없어요. 아파트 입주 단지 오픈이나 봄·가을 이사철, 영업 정책이 시행되면 일이 몰려요. 보통 시간당 하나씩 접수예요. 그런데 그 한 건이 인터넷 하나가 아니라, 요즘 IPTV가 많이 활성화 돼서 시간에 많이 쫓겨요. 건수로 치면 많은 집에 가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즘엔 인터넷과 TV가 여러 대인 집이 많거든요. 그 배선 다 하고 품질 측정하면 결국 시간에 쫓기죠. 점심 못 먹는 친구들이 최근에도 제법 많아요."


점심도 못 먹고 시간에 쫓겨 일하는 이들의 임금 수준은 기본급 138만 원, 식비 10만 원, 업무수행수당이 10만 원이 공통이고 여기에 개통 목표 포인트 이상 했을 때 플러스로 받는 것과 시간 외 수당을 받는다. 만약 목표 포인트를 채우지 못하면 공통으로 받는 158만 원이 전부다. 지금까지 월 200만 원을 넘기지 못한 기사도 있다고 했다. 자회사 전환 후 임금인상을 묻자, 기본급 10만 원에 식비 3만 원 총 13만 원 인상이 끝이라고 했다.

자회사 전환 SK브로드밴드... "그래도 스스로 정규직이라 얘기 안 해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015년 2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에서 비정규직 직접고용등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SK윤리경영'장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015년 2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에서 비정규직 직접고용등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SK윤리경영'장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희훈

"자회사 전환됐어도, 저희는 정규직이라고 얘기 안 해요. 사장만 달라졌죠. 저는 전에 하나넷이란 업체에서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홈앤서비스 자회사 소속인 거죠. 진짜 사장인 SK브로드밴드 직원으로 인정은 못 받은 거예요."

SK텔레콤의 자회사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 및 IPTV 설치, AS 업무를 103개(직원 약 5200명) 위탁업체를 둬 운영했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자, 7월 3일 민간부문에서 최초로 '자회사 정규직' 전환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노동조합에서 끈질기게 간접고용 문제를 제기하고, 2015년엔 80일 넘게 고공농성도 불사했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 강서·마포, 부산·제주·전주지역 5개 협력업체가 자회사 편입을 거부하고 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자회사 전환 후 분위기를 물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유니폼은 그대로예요. 분위기로 봤을 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왜냐면 여전히 실적 압박이 있고, 노동조합을 탄압했던 관리자들이 그 전에는 팀장이었는데, 지금은 센터장이 됐거든요. 센터장 되고 승계돼서, 똑같은 업무를 하고 있죠. 비조합원들도 '또 시작이네' 그래요. 관리자들이 여전히 압박하고 그러니까요."

인력 충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인력충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휴가를 제대로 쓰기 어렵다. 서로 고생하는 동료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있기 전에는 저녁 8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조정욱씨는 저녁 늦게까지 근무하던 때로 돌아가면 어떨 것 같을지 질문을 하자 난색을 표했다.

"싫죠. 그렇게 일 못 해요. 그리고 우리 직군에 일하는 사람들은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안 가져요. 이직률이 굉장히 높죠.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면 일은 힘든데, 처우가 나쁘니까 오래 근무할 생각을 못하는 거죠.

그나마 노동조합 생기고 싸워서 이직률이 약간 줄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이직률은 높죠. 그런데 요즘 자회사에서 지난 금요일(7월 21일), '토요일 프로모션'을 걸었어요. 기사에게 저녁 6시 이후 개통시 1만5000원 추가 지급하겠데요. 결국, 야간개통 하라는 거죠. 야간을 강제로 못 시키니 이런 조건을 걸더라고요."

연장 근무도 회사 눈치 때문에 하는 사례가 많다. 관리자가 실적 압박 메시지를 직원 단체방에 계속 보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설치·수리 업계 노동자들의 안전사고 발생의 주요 원인은 '실적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도 그렇고 모든 문제가 실적 압박 때문에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수리 기사는 오전 9시 반부터 첫 업무가 들어와요. 자회사 전환돼 업무 관련 동영상 보면 오전 9시 15분 정도가 되죠.

그런데 일하러 나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요. 평일은 그렇다 쳐도, 토요일에는 45분 단위 할당이거든요. 토요일에는 두 지역을 맡아요. 그런데 지역은 더 넓고, 업무 시간은 45분이니. 컴퓨터 위치 변경만 해도 한 집에서 40분에서 1시간은 걸려요. 그걸 얘기해도 회사는 실적만 따지니까 신경도 안 쓰죠. 그래서 기사들 교통사고, 접촉사고 건수도 많아요."

지난해 9월 발생한 추락사 문제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개선이 안 되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비가 왔거든요. 다른 기사들 얘기 들어보니, 비 조금 내릴 때 올라갔대요. 실적 때문에 미룰 수가 없었다고요. 비가 계속 오면 일을 못해요. 그러면 실적이 안 되죠. 날씨에 의한 문제인데도 담당 기사가 고객과 직접 통화해서 미뤄야 해요. 업무가 밀려있으니 한참 뒤로 배치되죠.

그러면 클레임이 발생되고, 해피콜 점수가 안나오죠. 고소 작업에 대한 2인 작업, 안전조치 매뉴얼도 없어요. 산업안전보건법에 나온 정도예요. 본사 지침으로 나온 건 우천시 승주금지, 그거 하나예요. 헬멧 착용하고 절연작업 장갑 끼고 그게 다죠. 2인 작업도 자기 업무가 끝나야 가능해요. 업무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안 될 수밖에 없죠."

인터넷 기사도 '감정노동자'... "새벽에 욕하는 경우도"

몸을 다치는 사고 외에도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는다. 고객들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기 때문이다.

"처음 노동조합에서 임금단체협약 맺을 때도 감정노동자라는 점을 많이 강조했죠. 저희는 업무 특성상 고객이 통화를 하면 연락처를 저장해요. 그러면 새벽에도 인터넷이 끊긴다고 전화를 하는 분도 있어요. 받아서 내일 아침에 간다고 해도, 막 욕을 해대요.

얼마 전 일요일에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그날도 고객이 전화해서 불만사항을 얘기하더라고요. 지금 와서 빨리해놓으라고 반말을 해요. 결국, 밥 먹다 말고 나가서 통화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식당에 들어갔어요."

문제가 있는 고객 대응도 기사 개인에게 떠맡겨진다. 다른 기사를 보내더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달까진 접수시 '다른 기사 방문 요청'이 기재돼 있으면, 기사에게 패널티를 부과했다고 했다. 조정욱씨는 '회사'가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건 회사가 그렇게 만든 거예요. 자회사 전환되고서 아침마다 이런 구호를 외칩니다. '고객은 퍼스트(first)다!', 그걸 시작으로 하고 마지막엔 '우리는 홈앤서비스!'를 외쳐요. 그 전에는 안 했죠. 일부 고객들은 무리한 요구를 해요. 예를 들어 컴퓨터가 한 대인데 회선은 4개를 연결해달라고요. 그래서 안 된다고 하면, 다른 기사를 불러요. 이런 문제는 회사가 막아줘야 해요. 하지만 기사 개인에게 책임을 미루면 정작 고객들과의 갈등만 키우죠."

그렇다면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보장을 위한 시스템과 문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가장 먼저 마련돼야 할까.

"이게 가장 고민 많이 했던 부분이에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왜냐면 가장 기본적인 스케쥴 조정조차 기사가 요청하는 대로 안 해주잖아요. 실적 압박에 대해 어느 정도 해소만 되도 진짜 많은 게 바뀔 거예요."

최근 KT 자회사 KTs 인터넷 수리 노동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설치·수리 기사들에 대한 작업중지권 요구가 나온 배경에 대해 물었다.

"반드시 필요해요. 사실 위험요인을 미리 파악할 수 있으면 좋은데, 저희 업무는 그게 어려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가서 상황 발생하기 전까진 몰라요. 작년쯤 다른 인터넷 업체 기사가 작업 마치고 뒤돌아서 신발 신는데 칼에 찔렸어요. 다행히 작업복에 장비가 많아서 약간 찢어진 정도였죠."

"비정규직·아르바이트가 죽거나 다친다... 그들은 '부품'이 아니다"

인터넷 설치·수리 기사노동자들을 비롯해 최근 반복되는 노동자들의 사고와 죽음을 막기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할까.

"사고들을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거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더라고요. 이 노동은 대부분 노동인권이 정착돼 있지 않죠. 우리가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공장 부품처럼 회사에서 취급하는 마인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돼요. 지금은 오로지 이렇게 해야 매출이 올라간다는 계산밖에 안 해요."

20여 년 가까이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로 살아온 조정욱씨가 바라는 안전한 일터는 어떤 모습일까.

"산재보험, 4대 보험 가입됐다고 안전한 일터가 아니에요. 그건 법적 테두리 안에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죠. 저는 노동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안전한 인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도 더운 여름날 무거운 공구 가방을 들고 골목을 누빌 조정욱씨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노동인권이 정착되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나중에 노동자가 아닌 위치에 있다 해도 노동인권에 대한 간절함은 끝까지 갖고 살 거예요.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계속 그 생각이 날 테니까요."
#인터넷 설치 기사 #작업중지권 #SK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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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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