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남소연
지낼 곳이 없어 친구 집을 전전했다. 가진 게 없어 집세도 못줬다. 대신 설거지, 집안 청소로 때웠다. 그런 강 의원을 친구들은 5년 가까이 보듬어 줬다. 그의 삶에 큰 축을 차지하는 것, 인복이다.
두 학기 등록금을 기꺼이 내어주는 이가 있었고, 엄혹한 시절 군대에서도 그의 뜻을 뒷받침해주는 정훈과장이 있었으며, <미생>의 장그래처럼 대우의 '상사맨'이 됐을 때 회사를 나가려는 그를 붙잡으며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 상사가 있었다. 그런 '어른'이자 '선배'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얼마나 운이 좋나요. 위기의 순간 순간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 갚는 건 기본이고, 제 눈에 보이지 않는 도움들을 모두 갚는다는 심정입니다."강 의원 인생에도 흑역사가 있었다. 주식투자가 '폭망'한 것이다. 20대 후반, 대우 다닐 시절 판매를 할당 받은 차를 지인에게 싸게 판 후 생긴 목돈을 주식투자에 쏟았다. 1000만 원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덕분에 3년 동안 월급의 1/3을 고스란히 차 값으로 부었다. 연애도 안 됐다. 관계가 발전해 결혼 얘기가 나오면 상대방 부모님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가 없다는 공백은 결혼의 장벽이 됐다.
악착 같이 돈을 모았다. 벤처 기업을 오가며 영업을 뛰었다. 그러다 정치인 노무현의 등장을 지켜봤다. 그 길로 2002년 노무현 후보 캠프로 찾아갔고 대통령 선거 날까지 노 후보의 수행비서로 전국을 함께 했다. 2007년까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다 다시 사회인이 되었다. 미장·방수 사업을 하던 중 전북 고창에 출마 권유를 받았다. 도전했으나 패했다. 2016년 그는 은평구에 출사표를 던졌고 이번엔 당선됐다.
돌고 돌아 결국 어머니다. 30여년 전 어머니가 은평구 연신내에 행운식당을 열고 터를 잡았기에, 제2의 고향인 은평구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한 고물상에 들어갔는데, 저희 어머니를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 1000원짜리 백반을 맛있게 드셨다고. 다른 데는 2000원, 3000원 하는데 행운식당은 맛있는 밥을 싸게 팔아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가셨다고. 소박한 행복을 주는 곳이었던 거죠. 어머니의 삶에서 배운 악착스러움, 나는 그걸 무엇을 위해 쓸거냐 했을 때 지금 이 자리에서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정치를 악착같이 해야지 않나, 그런 다짐을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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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폭망'하고 결혼도 포기... 돈만 좇던 내 앞에 나타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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