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정연욱, 황경주 기자.
권우성
- KBS 양대 노조의 총파업은 2년 6개월여 만이다. 공영방송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KBS 기자협회 제작거부 때 축제 분위기 같더라. 정연욱 기자(이하 정): KBS 기자협회 집행부라 제작거부 일정을 준비해왔는데,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사실 일정이 꽤 빡빡하다. 제작거부 출정식을 하고 바로 다음 날, KBS 대전총국에서 열린 KBS 전국기자협회 제작거부 출정식도 가야했다. 같은 날
KBS 4층에서 피케팅도 있었다.전날까지 함께 일하던 부장, 국장을 마주보고 '고대영은 물러나라', '공정방송 쟁취, 투쟁'을 외치는 거라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100명이 넘게 참여했다. 10년 차 이하 기자들은 90% 이상 왔다. 대전에 전국기자협회 출정식을 갈 때도 원래 예약했던 45인승 버스 3대로는 모자라 추가로 한 대를 더 빌릴 정도였다.
황경주 기자(이하 황): 양대 노조의 파업이 2014년이었는데, 그때 수습이었다. 사실상 파업 참여는 지금이 처음이다. 어린 연차의 기자들은 파업을 갈구했다. 행동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사실 우리는 공정방송 KBS가 제 역할을 해냈던 시절을 겪은 적 없다.
리포트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 부장이랑 일선 기자가 국장실에 들어가서 문장을 지켜냈다는 일화를 말로만 들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뉴스, 방송에 대한 배고픔이 더 컸다.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파업이 축제 분위기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단적으로 동기 채팅방이 활성화됐다. 서로 일정을 공유하며 참여하고 있다. 사실 선배들이 책임을, 우리는 행동을 담당하지 않나. 그걸 잘 알기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려고 한다.
- KBS 기자협회가 제작거부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얼마 전 보도국장이 군 댓글 공작에 대한 특종에 대한 제작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뉴스의 신뢰와 공정성이 얼마나 무너졌던 건가. 정: 무너졌다는 말을 할 시기도 지났다. 무너졌다는 건 못하게 하는 건데, 그 수준을 넘어서 '이건 (발제) 해봤자 안 돼' 식의 자기검열이 내면화됐다. 아이템에 관한 의견을 내거나 자유로운 발제를 하면 주변에서 황당하게 보는 분위기다. '안될 걸 왜 해' 이러는 거지. 2009년 이후로 서서히 그래왔다. 지난해 국정농단 보도만 봐도 KBS는 보도 경쟁에서 철저히 소외되지 않았나.
황: 2016년 9월에 법조팀으로 발령받았다. <한겨레>가 최순실 게이트 특종을 하기 딱 일주일 전이다. 이어 JTBC의 태블릿 보도가 나왔다. 다른 언론사는 난리가 났는데 우리는 손 놓고 있었다. 모니터링만 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도 모자란 데, 발제해도 "다 나온 얘기잖아"라는 답만 돌아왔다. 소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왜 또 해"라는 말만 들었다. 발제해도 안 나가니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JTBC의 태블릿 PC 보도 캡쳐본을 받아서 보도하는데 정말 자괴감이 들더라. 국장단이 참석하는 편집회의 내용을 기자들도 볼 수 있는데, 거기에 '황경주 잘 정리했음' 이런 식으로 칭찬이 올라오면 굴욕적이었다.
주니어 기자는 판단능력이 부족하지 않나. 내 판단에 자신이 없을 시기다. 다만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취재를 하고 팀장, 부장의 지시와 판단을 받는 거다. 그런데 도저히 부장을 못 믿겠더라. 맥락을 바꿔서 의도 갖고 방송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게 참 힘들었다. 선배를 믿고 따르며 배워야 하는데 일단 의심부터 드니까.
정: 사석에서 당시 사회부장이 하는 말 많이 들었다. "태블릿 PC의 경위 과정을 의심하고 취재해야 한다"고 하더라. 입수 경위에 대한 의심만 가득했다. 기본적인 내용을 쫓아가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게 아니다. 전혀 궁금해 하지 않다가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니 입수 과정을 의심하더라. 그게 KBS 보도국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