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추가로 반입한 사드 발사대를 설치해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진짜 레드라인은 북한 앞에 그어져 있지 않다. '여기서 더 놔두면 중국이 우릴 추월할지 모른다'고 미국이 판단할 때가 진짜 레드라인일 것이다. 손 놓고 그걸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제국주의가 아닐 것이다. 그 상황이 무르익으면 작은 우발적 충돌이나 어리석은 오판이 거대한 재앙으로 나간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것은 '한미일 동맹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의 관점에서는 피해자의 공포와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6차까지 오면서 갈수록 그 간격과 시간이 단축돼 온 북한 핵실험의 뒤편에는 그보다 더 빨리 강화돼 온 한미일 동맹의 대북 압박이 있었다.
왜 우리는 자국 상공을 통과한 미사일에 분노한 일본에는 감정이입을 하면서, '죽음의 백조'(B-1B 핵폭격기)가 머리 위에 뜰 때마다 북한이 느낄 공포에는 공감하지 못하게 길들여졌을까? 북한의 요구는 전쟁연습 중단이었는데, 훈련 참가 미군 규모가 약간 줄어든 것만으로 북한이 만족해야 했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5·24조치 무엇하나 풀리지 않았는데 북한이 남북대화에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북한 핵실험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서, 7000개의 핵탄두를 가진 미국이 앞으로 30년간 1천조 원을 투자한다는 '핵무기 현대화 계획'에는 별 관심과 걱정이 없는 것인가? '스마트 핵폭탄'을 개발해 중국 등을 겨냥해 실전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전쟁위험의 당면한 실질적 위협인데 말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이런 '가해자 관점과 동일시'의 덫에 빠져 갈수록 마치 트럼프나 아베처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허락하는 햇볕'의 한계이자, 수단(강풍보다 햇볕)은 달랐지만 결국 목적은 같았던 전략의 한계이기도 하다. 북한을 굴복시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편입시킨다는 목적 말이다.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햇볕정책의 제1원칙이었고, 지난 10년간 악화된 객관적 조건과 상황에서 이 한계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햇볕'을 내세운 정권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를 앞당기는 두가지 이정표(평택미군기지, 사드 배치)가 세워진 비극은 여기서 비롯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강경한 대북정책과 발언들이 우파가 정부를 비난하며 재결집할 기회를 차단했다고 자족하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북핵 위기는 전통적으로 우파 결집과 득세의 기회였지만 아직 자유한국당은 지리멸렬하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장기적으로 우파 재기의 토대를 닦아준 게 될 것이다. 왜냐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자' 논리의 원작자는 바로 냉전우파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의 또다른 강력한 신봉자는 역설적으로 바로 북한 정권이다. 북한 정권은 독재 권력을 강화하고 군비와 무기를 증강하는 것으로 외부 압박에 대응해 왔다. 북한은 미국의 진정한 타깃이 자신들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가 보는데서 괌의 사드로 우리 미사일을 막아보라'며 트럼프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런 북한의 반작용은 명백히 반전, 반핵, 평화의 가치와 어긋난 것이고 사드 반대 운동과 아래로부터 국제연대 모두에 해를 끼친다. 따라서 이것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원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자세다. 하지만 우리의 비판은 벼랑 끝에서 악을 쓰는 사람보다, 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몬 자들을 우선적으로 향해야 한다.
북한 정권교체까지 들먹이며 대북 압박과 전쟁연습을 해온 나라들(한, 미, 일) 위에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다면 더욱 이런 균형과 강조점을 주의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도, 말하는 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효과와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공을 똑바로 던졌다고 생각해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사드 대못박기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역시 촛불은 별로 바꾼 것이 없고, 반 년 만에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촛불의 뿌리와 힘은 결코 몇몇 정치인과 권력자로부터 나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한다. 지난 겨울에도 기성 정치인과 정당들을 움직이고 우파의 손발을 묶었던 것은 촛불이 거대한 들불이 되면서 박근혜없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전국을 뒤덮을 때였다. 우리가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손을 잡고 힘을 모을 때였다.
우리는 분노만큼이나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왜 지금 우리는 사드 문제로 거대한 들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가. 성주 주민들의 외로운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는가. 사드가고 평화오는 세상에 대한 꿈으로 군비경쟁의 악몽들을 물리치고 있지 못한가.
어떤 벽들이 우리가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가.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이 벽들을 넘어설 수 있다면, 대재앙의 치킨게임 속으로 달려가는 권력자들을 막아설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위한 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므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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