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삶창
제주서 제주사람으로서 제주말을 짓는 김수열 님이 들려주는 <물에서 온 편지>(삶창 펴냄)를 읽습니다. 물에서 온 글월을 읽는 시인은 뭍에서 오는 글월도 읽습니다. 바람한테서 오는 글월도, 구름이나 빗물한테서 오는 글월도 읽어요.
여든 넘은 시어매한테서 이야기꽃으로 날아오는 글월을 읽고, 해짓골 올빼미 형한테서 이야기밭처럼 다가오는 글월을 읽어요.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글월이 아닌, 곁에서 물끄러미 마주하는 글월입니다.
해짓골 올빼미 형은
멜철 들어 물이 싸면 탑바리 원담에족바지 들고 멜 거리레 갔다이레 화르르륵 저레 다울리라저레 화르르륵 이레 다울리라
작대기 들고 바당물 탕탕 치당보민팔딱팔딱 족바지에 멜이 가득 (원담)시집 <물에서 온 편지>에 흐르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웃님들 살림이란 노래하고 같지 싶습니다. 대중가수나 유행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 수수한 보금자리를 가꾸는 살림지기나 살림꾼으로서 나긋나긋 부르는 노래이지 싶어요.
허리 잘린 국화를 주워서 새롭게 밝히는 손길이 노래입니다. 여든 넘은 시어매가 예순 넘은 며느리한테 안경 한 벌 마련해 주려고 부산스레 읍내를 누비는 발길이 노래입니다. 멜을 훑으러 족바지 들고 다녀오는 해짓골 올빼미 형 몸놀림이 노래입니다. 여기에 이 모든 살림살이를 살포시 안아서 글꽃이라는 숨결을 담아내니, 시집 한 권이란 노래책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보말이 보말이주, 보말을 뭐셴 고라?고메기? 난 몰라, 우리 동네선 그자 보말 (보말죽)노란 꽃송이인 민들레를 '노란꽃'이라고만 해도 되고 '노랑둥이'라든지 '노랭이'나 '누렁이'라 해도 됩니다. 어떤 말을 붙여서 마주하든 따사로운 눈길이면 곱지요. 하얀 꽃송이인 민들레를 '흰꽃'이라고만 해도 되며 '하양둥이'라든지 '하양이'나 '허영이'라 해도 됩니다. 어떤 말로 불러서 맞이하든 넉넉한 손길이만 곱습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마주하기에 글월을 받습니다. 냇물도 글월을 띄우고, 골짜기도 글월을 띄워요. 종가시나무가 띄우는 글월을 받아 볼까요? 후박나무나 동백나무가 띄우는 글월을 받아 볼까요? 자귀나무나 가문비나무가 띄우는 글월을 받으면 어떨까요?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우리한테 글월을 띄웁니다. 다만 우리가 이들 작은 이웃이 띄우는 글월을 못 알아챌 뿐입니다.
작은 마을이나 작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이웃도 늘 글월을 띄워요. 작은 연립주택이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이웃도 노상 글월을 띄우고요. 우리는 어떤 글월을 알아채면서 기꺼이 받는 삶일까요? 우리는 누구를 이웃으로 삼아서 글월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살림일까요? 제주에서 날아온 시집을 덮으니 보말죽 냄새가 고소하게 퍼집니다.
물에서 온 편지
김수열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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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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