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자들에게 '슈돌'은 가장 잔인한 방송"

아들·며느리 행방불명… 손자 셋과 고된 삶, 슬픈 '인생' 더 슬픈 '현실'

등록 2017.09.13 11:34수정 2017.09.1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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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자상한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화려한 집, 즐거운 여행,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채널 돌리기 바쁘다. 부모 없는 손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 충남시사 이정구


"어느 날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너무 슬펐어요. 우리 아이들은 병든 할머니 밑에서 하루하루 잠잘 곳,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가는데 상대적 빈곤감이 너무 크게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김정순(72·가명, 아래 손자모두 가명) 할머니의 말이다. 김 할머니는 일호(15), 이호(10), 삼호(10) 세 명의 손자와 아산시 신창면의 한 임대주택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세 손자들은 김 할머니 큰 아들의 자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에서 아이들이 자상한 부모와 함께 화려한 집에서 살고 즐거운 여행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채널 돌리기 바쁘다. 부모가 없는 손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작은 주방과 방 한 칸이 할머니와 손자 3명의 생활터전이다. 성장기의 사내아이 3명을 품어주기에 작은 방은 곧 미어터질 것만 같다. 할머니는 TV 속 화려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장 치킨 한 마리 사주는 것조차 어려운 본인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평생 매 맞은 기억밖에"

김 할머니의 인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1945년 광복되던 해 김 할머니의 부모님은 일본에서 김 할머니를 임신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 대전에서 낳았다.

김 할머니는 23살 되던 해 이웃마을의 두 살 많은 청년을 만났다.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3남매를 낳았다. 직업이 경찰인 김 할머니의 남편은 처자식들이 굶어도 집에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았다. 대신 김 할머니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때리며 학대했다. 


김 할머니는 친정에서 어렵게 손을 벌려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나 남편의 계속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선택했다. 그 후 남편은 4명의 여인과 관계를 이어가며 외도를 했다.

이혼 후 서울로 떠난 김 할머니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났다. 두 번째 남자는 더 없이 선하고 착해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술만 마시면 김 할머니를 죽일 듯이 때렸다. 모진 매질을 견디다 못한 김 할머니는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친정집을 찾아가 친정식구들을 괴롭혔다.

결국 할머니는 두 번째 남자에게 돌아가 혹독한 매질을 견디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포악했던 두 번째 남자는 병을 얻어 사망했다.

미국에서 첫째 아들을 만나다

두 번째 남자와 사별한 김 할머니는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간병인을 비롯한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몸이 병들어 있음을 알게 됐다. 폐암이 상당부분 진행된 것이다. 2003년 할머니는 폐암수술과 함께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아들로부터 소식이 왔다.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것이다. 대신 맞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 폐암수술 이후 다시 얻은 삶이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미국은 김 할머니가 생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들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고, 그동안 김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돈까지 빼앗아 모두 도박으로 날렸다. 그러고 나서 병든 노모와 7살, 첫돌 지난 쌍둥이 자식을 모두 내팽개치고 잠적해 버렸다.

빈손으로 돌아온 한국, 손자들 키우기 막막

할머니 수중에는 돈 한 푼 남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에게 자식들만 남긴 채 행방불명이다. 할머니는 3명의 손자를 떠안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왔지만 할머니는 당장 거처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떠돌다 찾아간 곳이 아산시 신창면의 어느 빈 농가였다.

그 곳은 여름에는 빗물이 새고, 곰팡이와 해충이 들끓었다. 겨울에는 난방을 못해 온 몸이 얼었다. 할머니는 수확 끝난 밭에서 감자, 고구마, 배추, 무 등 이삭을 주워다 손자들을 먹였다. 농사일을 거들며 끼니를 해결하려 했지만 체력이 바닥나 하루 일하면 1주일을 앓았다. 폐암 수술과 스트레스로 고갈된 체력에, 당뇨와 성인병 등 각종 합병증도 심각한 상태다. 

김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신창면사무소와 몇몇 재단에서 도움을 주고 있으나 턱 없이 부족하다.

큰 손자 일호는 한국어를 전혀 못했으나 점차 적응하며, 학교성적을 올리고 있다. 쌍둥이 형제인 이호와 삼호도 제법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호는 오른쪽 귀가 선천적 기형인 소이증을 앓고 있다. 3차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현재 1차 수술까지 마친 상황이다.

김 할머니는 "기구한 팔자가 서러워 죽으려고 안 해 본 짓이 없지만 번번이 살아났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저 어린 것들을 키우라고 날 살려준 것 같아요"라며 "우리 가족이 언젠가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라며 눈물지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슈퍼맨이돌아왔다 #조손가정 #도박중독 #아산시 #충남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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