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힘, 소설에서 만났다

[서평] 황석영의 <손님>

등록 2017.09.14 11:24수정 2017.09.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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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야심차게 적폐청산을 목표로 달리다 북핵이라는 거대한 산을 맞닥트렸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거침없이 진행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화 제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략적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중에 사드배치를 둘러싼 국내 의견은 분분해지고 트럼프 행정부는 순발력 있게 한국과 일본에 전략무기 판매를 제안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반도의 운명은 깊은 안개에 가려 쉽게 장래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현대사에서 분단이라는 변수는 우리 사회의 다른 모든 의제를 삼켜버리는 거대변수로 기능했다. 당장 적폐청산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북핵 위기 앞에 꼬리를 감추었다. 위기 앞에 확연히 드러난 것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무력감이다.

우리에게 진정 자기결정권이 있는지 심각하게 되묻게 된다. 북한에 비해 경제력이 수십 배 앞서있는 남한이 미국의 사드를 배치하지 않고서는 안보를 장담 못한다고 하는데 정작 위협을 느끼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인가 보다. 중국은 서슴지 않고 경제 보복을 수행한다. 참으로 난망한 상황이다.

촛불시민혁명을 주도한 국민들 또한 전략적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북한 제재를 강력히 촉구하며 사드 배치의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극우세력은 말할 것도 없이 평화를 꿈꾸는 일반 시민사회 저변에서부터 두려움과 증오의 기운이 옮아가고 있다. 전략과 정책적 수단을 논하기 이전에 문재인 정부에게 헤게모니를 주었던 촛불시민사회의 뒤숭숭한 분위기가 진정한 위기를 말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의 트라우마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고 있다. 상처가 아물만하면 다시 덧나고 아픈 상처가 온몸에 전이되는 양상이 반복된다. 한국 사회에 내면에 깊이 드리워져 있는 증오와 두려움을 기원을 복기하기 위해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다시 손에 들었다.


 황석영의 <손님>
황석영의 <손님>창작과비평사
작가 황석영이 2001년에 내놓은 이 소설은 2000년 남북회담 이후 조성된 남북 화해의 분위기 속에 오랜 분단 갈등의 기원을 망자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고 다시금 화해와 상생의 길을 상상하게 만든 작품이다.

소설 속 배경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중순부터 그해 말까지 약 3만5000여 명의 황해도 신천군 마을 주민이 살해된 '신천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 정부는 신천군에 '신천 학살 기념관'을 세워 미군의 잔인한 신천 군민 학살사건을 고발하며 체제 선전용으로 신천 학살사건을 활용해 왔다.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가.

소설은 당시 학살 사건을 경험한 류요한의 일상에서부터 전개된다. 류요한과 류요섭 형제는 재미교포다. 류요섭은 재미교포 목사로 북한 고향 방문의 기회를 얻어 고향 신천군을 오랜만에 찾아가게 된다.

신천 방문을 계기로 요섭은 당시 사건의 진실을 엿보게 된다. 류요한은 요섭의 형으로 신천 학살사건의 장본인이다. 그는 지난 끔찍한 기억에서 해방되지 못하다가 요섭의 북한 방문 직전에 사망한다.

류요섭은 신천 학살사건 당시 어린 나이여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고향을 방문하며 살아남은 자와 망자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사건의 진실은 바로 신천 학살사건은 외부자 미국이 아닌 북한 기독교 자영농과 사회주의자들 간의 치열한 전쟁의 결과였다.

해방 후 급진적으로 진행한 북한의 토지개혁으로 대다수의 대지주는 월남하였다. 남아 있었던 기독교인 자영농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원했다. 땅이 없었던 다수의 소작농은 사회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신분과 땅을 하사 받는다. 이해관계를 달리한 양대 세력은 한국전쟁의 전개 양상에 발맞추어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서로를 죽이는데 앞장섰다.

신천 학살사건은 '하나님의 전쟁'이었고 또한 '계급 혁명전쟁'이었다. 증오와 두려움 속에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생의 경계선에서 다른 여지는 없었다. 누구도 말 못할 끔찍한 현장을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네 편, 내 편이 없는 죽음 이후의 망자들의 특권이었다. 망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분단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었던 황석영의 상상과 통찰이 돋보인다.

작가 황석영은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 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라고 말한다. 무서운 손님 마마님과 같이 한반도에 찾아온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나의 형제요 나의 이웃을 죽이는 무서운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했다.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실체적 진의를 넘어 분단의 현장에 결과로서 존재한 손님을 말한다.
     
우리는 과연 손님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오늘날 재생되고 있는 증오와 두려움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시대적 과제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동인으로서의 한국 시민사회를 다시 주목한다.

한국사회는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역동의 날갯짓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변화에 대한 몸부림은 촛불시민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동인이다. 그 힘으로 철옹성과 같았던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내었다. 

깨어있는 시민사회의 깊은 성찰과 과감한 도전이 한반도를 둘러싼 '손님마마님'을 넘어 새로운 평화의 물꼬를 열어낼 수 있을 것인가. 기독교 청년단에게 죽임을 당한 머슴 일랑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는다.

'조선의 하나님을 믿어라!'

작금의 한반도는 우리의 성찰과 우리의 고뇌가 담긴 자생적인 결단과 실천이 절실히 요청된다.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온다. 증오와 두려움의 기운을 넘을 수 있는 평화의 새로운 시대적 물꼬가 열리기를 염원한다. 우리는 손님마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을 읊조리지 않더라도 촛불시민혁명을 이루어냈다. 손님 하나님이 아닌 조선의 하나님을 믿는다.

손님

황석영 지음,
창비, 2001


#손님 #토지문제 #신천군 #황석영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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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믿음으로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주어진 토지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신입니다. 희년정신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토지배당,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함께 희년실천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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