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철회-파업-철회 오락가락 사립 유치원, 왜?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사립유치원들의 집단 파업(휴업)이 결국 불발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아래 한유총)는 15일부터 파업경고-철회를 반복하다가 파업 전날인 17일 오후 파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차가운 여론과 '파업 유치원 폐쇄 조치 등 교육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 백기를 든 것이다.

이들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명분의 부재'다. 애초 '씨알도 먹히지 않을 주장'을 했기에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파업을 접는 '면 안 서는' 일을 당한 것이다.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인상해서 유치원이 아닌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하라고 했다. 설립자가 운영경비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하라고도 했다.

풀이하면 '국고를 지원하되 간섭도 감사도 하지 말고 마음대로 쓰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세금이 지원되면 당연히 감사를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려 했으니, 발상부터 무리였다. 여기에 국공립유치원 원아 비율을 40%로 확대하려는 교육부 방침 중단을 요구사항에 얹었으니, 여론이 따뜻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한유총 파업의 도화선이 된 경기도 교육청의 사립유치원 감사결과를 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모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015년부터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시행해 갖가지 비리 행위를 적발했다. 비리가 무거운 곳은 경·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자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감사 중단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 감사 담당 공무원을 '명예훼손,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유총은 집단 휴업이라는 강경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거부, 서류 무단파기한 사립유치원은 수사 의뢰

지난 2015년 10월부터 2017년 7월까지 경기도 교육청이 감사를 한 사립 유치원은 총 80곳이다. 80곳 모두에서 크고 작은 비리를 적발해 '학부모에게 환급, 회수, 보전' 등의 재정 조처를 했다. 재정 조처 금액은 74억 300여만 원이다.

부당하게 집행한 금액이 큰 무거운 비리 혐의가 있는 18곳은 경·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의뢰 내용은 ▲ 감사 거부 및 피감서류 일체 무단파기 ▲ 이중 지출 및 사적 사용 ▲ 설립자 가족 운영 특정업체와 독점거래 및 설립자 소유 어학원으로 부당지출 ▲ 페이퍼컴퍼니와 거래하여 설립자(원장) 개인계좌로 부당지출 ▲ 교육청에 미보고한 은닉통장 등이다.

비리 유형은 다양하다.

[사례1] "2014~2016년까지 총 31회 4억3천여만 원을 아무런 근거 없이 설립자에게 이체. 또한, 설립자 개인 휴대폰 요금 및 자동차세 8백여만 원을 유치원회계에서 지출. 상근하지 않는 설립자에게는 급여 등을 지급할 수 없음에도 업무추진비(판공비)로 7천만 원을 지급. 2012~2013년에도 동일 명목으로 1억9천여만 원을 부당하게 지급."

[사례2] "교재판매회사와 공모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알선. 설립자(원장)의 친인척 명의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부풀린 금액으로 교재비를 지급한 뒤 실제 교재비 외 나머지 금액은 개인의 대출금 변제로 사용하여 총 42억 3천여만 원을 학부모로부터 부당하게 편취."

[사례3] "유치원 계좌에서 유치원 내 불법운영 어학원 계좌로 20억6천만 원 부당지급. 영어교육비로 10억여 원, 영어교육과 무관한 도예·요리 교육비, 유치원 수영장 보수비 등으로 약 10억 6천만 원."

[사례4] "설립자의 개인 외제차량(벤츠, 아우디, BMW) 3대를 유치원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차량 보험료(2014~2015) 1천4백만 원 지출. 설립자의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8백3십만 원(2014.3~2016.2)을 유치원 회계에서 지출. 고가의 도자기(2500만 원),
글라스(3300만 원) 구매에 대해 학부모 선물로 샀다는 이해하기 힘든 해명을 함."

이밖에도 원장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유치원 운영경비에서 지출한 유치원도 있고, 원장 개인 카드로 지급한 모텔·호텔·노래방·성인용품 구매비를 (유치원 운영) 증빙서류로 제출한 유치원도 있다. 설립자 남편의 여행경비를 운영경비로 지출할 정도로 회계 관리가 엉망인 유치원도 있다.

이렇듯 사립유치원 비리가 무더기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집단 파업(휴원)을 하려 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나마 파업 직전에 멈춘 게 다행이다. 밀어붙였으면 거센 국민 저항에 부딪혔을 것이다.

파업을 비롯한 집단행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명분'이다. 국민에게 박수받으면 성공할 수 있지만, 비난받으면 '필패'다. 감사에 성실히 임하는 게 사립유치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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