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틀목수는 콘크리트 건물의 골조를 세우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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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아시겠지만 사실 형틀목수가 남자들이 하기에도 물리적으로 굉장히 강도 높은 노동이에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굳이 이 일이 아니라 다른 그러니까 여성들이 감당할만한 일을 할 수도 있잖아요? "사실 남편 분이 완전히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예쁜 집에 황토 방을 만들어서 노후를 즐기자고 했어요. 처음에 이걸 시작할 때 돈 보다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죠. 제 손으로 집도 짓고 황토 방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상담을 받고 현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저는 실제 저한테 이 일을 시킬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고민도 많이 했죠. 제가 과연 이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요."
- 현장에 다른 여성목수는 있나요?"제가 다닌 현장에는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현장에 제가 나온 건설기능학교 출신 여성목수들이 여럿 있어요."
- 현장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무언가요?"탈의실 하고 휴게실이 없는 거죠. 여자화장실은 요즘 현장마다 다 있어요. 하지만 참시간하고 점심시간에 따로 쉴 공간이 없어요. 다른 팀원들 잘 때 같이 잘 수도 없어 혼자 앉아있어여 하는 게 가장 고역이죠."
- 지금 건설노조 팀으로 일을 하고 계세요. 일반 팀이라면 어땠을 것 같아요?"일반 팀이라면 안 받아주겠죠. 일반 팀은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분들 입장에서는 여성목수라면 이래저래 걸림돌로만 생각하겠죠. 그나마 성 평등 의식이 있는 노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 자재가 다 무거울 텐데 현장에서 그걸 직접 들기도 하나요?"어깨에 메고 다니죠. 핀 주머니도 들고 못 박스도 들고요. 오비까(8센티미터 두께에 3600센티미터 길이의 나무 각재)도 들고 다녀요. 폼도 하나 씩은 들어 옮기고 붙이기도 하고요. 제 힘이 닿는 선에서는 제가 해야죠. 여기 팀장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가급적 무거운 것 덜 들게 하고."
- 일당은 만족하시나요?"만족해요. 여자 수입으로 보면 적은 돈이 아니죠. 제가 일당을 15만원 받는데요. 한 달에 스무날 넘게 항상 일을 하니까요."
- 솔직히 이 일을 다른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제가 소개해서 일 잘하고 있는 모임 동생이 하나 있어요. 나이가 마흔 셋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 섣불리 권할 순 없죠. 밖에서 볼 때는 이 일이 그냥 노가다잖아요."
- 본인도 일을 하기 전에는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그랬죠. 오죽하면 저런 일을 할까 그랬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고요."
- 가까이서 보니 어떤가요? 오죽하면 저런 일을 할까 생각했던 사람들이요."다들 목표가 있고 열심히 사세요. 단순하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더라고요. 생활력도 강하시고."
- 아직도 건설현장에서 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별로 안 좋은 게 사실이잖아요. 이제 그 당사자이신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나름대로 기술도 있고 목표도 있는 분들인데 아직도 사람들은 노가다나 하는 사람들로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술 먹고, 욕 하고, 가정 돌보지 않고 그런 식으로요. 그런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저는 그게 꼭 직업에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저도 사회생활을 많이 해봐서 알지만 그렇게 하시는 분들 어딜가나 꼭 있거든요. 개인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당장 저만 해도 이 일이 제 적성에 맞고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그녀가 건설현장 목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남자들만이 점유하고 있던 형틀목수라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여자목수 양혜춘씨. 그녀가 남자들도 기피하는 건설현장 목수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다.
그녀는 노후에 남편과 함께 황토 방이 있는 집에 살겠다는 선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녀는 그 집을 자신이 직접 짓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집 짓는 걸 배워야 했고 우연한 기회에 목수가 되는 길을 찾았다. 처음 건설현장 앞에서 그녀 역시 다른 이들처럼 두려웠고 무서웠지만 그녀는 그 부정적인 마음의 실체가 허상 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있다면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지난 삶이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근거 없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나 다른 사람의 왜곡된 편견의 말을 그녀는 자신의 자존감 있는 선택으로 이겨냈다.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자신에게 장차 닥칠 긍정적인 미래를 전해주던 그녀의 말은 차분했지만 가볍지 않았고, 강하지 않으면서 묵직했다.
다만 거친 남자들의 세계인 건설현장에서 여성노동자로 그것도 남자들도 버거워 하는 형틀목수로 살고 있는 그녀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내가 물었다.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나는 그게 강도 높은 노동일거라 지레짐작했다. 틀렸다.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피부죠. 선크림을 바르고 두건을 뒤집어써도 하루 종일 햇볕에 노출되고 바람에 타니까요. 제일 속상한 게 피부죠.
그녀는 속상하게 그을려 있는 검고 건강한 피부위로 함박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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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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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반대 뿌리치고 그녀가 노가다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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