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빔아빠가 아들에게 사준 분홍색 설빔
구진영
권력 없는 그들의 몽니... 그래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남편이 설빔으로 아이에게 사줬다는 말에도 시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시누의 무례함은 계속됐다. 남편에게 연락해 "어디 가서 부인 자랑하지 말아라, 팔불출 같다"고 하는 건 약과였다. 첫째 아이의 돌잔치에 오고도 자신의 남동생에게는 인사를 하고 갔는데, 내게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시누의 무례함을 참고 참다가 드디어 폭발하는 날이 왔다. 시어머니 제사 때문이었다. 남편은 네 차례의 차례상과 두 차례의 시어머니 제사상을 새로 들어온 식구가 차리는 동안 연락 한 번 안한 시누에게 그건 무례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시누가 그에 대한 답변을 문자로 보낸 것이다.
"걔, 엄마 제사 진심으로 지내는 거 아니야.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제사를 진심으로 지내는 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누의 문자에 의해 교활한 사람이 된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있었는데 "산후우울증도 정신병이야! 내 문자 지워, 내 문자보면 또 난리칠라"라는 시누의 문자가 남편에게 도착했다. 그날, 남편과 나는 상의 끝에 당분간 시누와 왕래를 하거나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자 김승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요. 그 관계들은 종종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깁니다. …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다시 그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시누는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이었겠지만 며칠 전부터 장을 봐 놓고 당일 날 새벽부터 음식을 하는 나의 노력을 '진심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거짓말로 매도했다. 이것이 나도 모르게 몸 속에 상처로 남아버린 것 같다.
시누와 연락을 잠시 끊기로 했음에도 명절이 다가오자 계속해서 시누가 남편에게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문자가 떠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분노가 차 올라왔다. 이런 대접 받으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시어머니의 차례상을 차려야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결혼 전부터 시누의 무례함을 참고 견뎌야 했는지 나름 고민을 했다. 이것은 혹시, 권력이 없는데 권력이 있다고 착각한 시누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이런 수모를 참고도 나는 추석 차례상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추석이 끝난 일주일 후, 갑자기 진심이 아니게 돼 버린 시어머니의 제사상도 차리게 될 것이다. 이번 명절, 그래서 나는 나를 응원한다.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두세 번 왕복할 우리 엄마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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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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