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텐부르크 도심의 교회부란덴부르크에는 오래된 교회와 고성의 흔적이 많다.
강명구
한참을 대책 없이 앉아 있다가 사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쳐도 밖에 내다보지를 않는다. 나는 긴급조난자처럼 소리를 쳤고 2, 30분 만에 드디어 안에 있던 사람이 밖을 내다본다. 그가 전화를 해주어 10분 후에 종업원인지 매니저가 나타나서 '일요일은 사람이 없고 열쇠를 함에 넣고 전화하면 비밀번호를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독일은 정말 일요일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슈퍼마켓까지 문을 닫아버리니 우리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오래달리기는 내 안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꿈과 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준다. 달리기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달리는 것은 역동적으로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시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움직임이다.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 변덕스런 날씨를 느낀다. 땀을 식혀주기도 하고 옷깃을 여미게도 하는 바람이 다 사랑스럽다.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심연과도 같은 깊은 고독 속에서 내 몸의 오감이 느껴진다.
독일은 성(castle)의 영주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독일어 발음 부르크(-berg)는 성, 돌, 산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지나온 마데스브르크라든가 여기 브란텐브르크, 또 함부르크 같은 곳은 영주가 다스리던 공국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또 (-furt)라는 지명도 많다. 푸르트는 샘이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는 샘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이다.
브란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빨리 씻고 누적된 피로를 풀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호텔 문이 잠겨있다. 정문에 전화를 하라고 쪽지가 붙어있는데 전화할 수 없다.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다. 한참을 기다리다 지나가는 중년신사를 붙들고 전화를 부탁하니 자기는 전화가 없단다. 또 한참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금발머리의 여자가 지나간다.
전화를 걸어 문 비밀번호를 받았다. 호텔방에 올라가 방문이 열리는 것까지 확인하고 다시 내려와서 정문의 비밀번호로 내가 문을 여는 것 까지 확인해준다. 독일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생각을 한방에 날려 보내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독일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닐 판이었다. 내가 너무 피곤하지만 않았다면 같이 저녁이라도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유럽에서 가을비에 씻긴 담장이덩굴이 덮고 있는 고성이 숲 사이에 솟아있는 것을 마주보고 서있는 일은 멋진 일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런 성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를 달리며 처음 와 본 도시의 감회에 젖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잠시 후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멋진 건물들이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며 핍박하던 본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착취를 당했을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저 웅장한 건물들이 서있는 것이다. 지배자는 늘 백성을 위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오로지 한 사람의 권력자와 그의 일족을 위한 건물이라는 상념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