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음주뺑소니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비자를 받지 못해 올 시즌 소속 구단에 합류하지 못한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 메이저리거 강정호가 19일 오후 연합뉴스와 단독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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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무난한 삶은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한다. 그냥 아무 문제 없이 평이하게 사는 삶보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도전하고 목표를 이루는 삶, 성취하는 삶이 더 좋은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목표를 설정하고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해내는 불굴의 정신은 숭고하다. 그런데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많은 시련과 강한 억압을 동반하며 현실의 심각한 희생을 요구하는 도전은 한편으로 사고의 위험도 키우기 마련이다. 인간은 현재를 사는 감정의 존재이니까.
고대 철학자들부터 오늘의 정신분석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현자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 내면에는 어떤 심리적 에너지가 운동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는 적절히 운동해야 한다. 물이 고이지 말고 흘러야 하듯이 말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끔은 마음이 가는 대로 에너지가 내면 밖으로 발산돼야 한다. 그런데 목표가 생겨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리다 보면 에너지는 흐르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쌓이게 된다. 그렇게 에너지가 쌓이면 내면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에너지가 쌓일 대로 쌓인 이들은 평소 에너지를 잘 발산시키며 현재를 사는 이들보다 사고의 환경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내면의 압력으로 민감해진 사람은 덜 민감해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작은 사건에도 더욱 깊고 생생한 인상을 받게 되고 반응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최근의 연이은 사건들에 앞서 강정호 선수에게 일어났던 이전 사건 하나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2년 전인 2015년 9월 그는 경기 중에 무릎이 박살나는 부상을 당한다. 부상 당한 강정호는 국내로 복귀하는 대신 현지에서 부상을 잘 치료해 다음해 리그에서 활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래서 그는 그해 겨울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서 온전히 재활 치료와 훈련에 매진한다.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출국한 지 거의 2년이 다 된 2016년 말이다.
그는 2년 동안 성공적인 재활 치료와 복귀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졌을 테고 실제로 그는 그런 시간을 거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언론은 그의 강한 의지와 태도에 찬사를 보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경우 부상을 당하면 일찍 혹은 정상적으로 국내에 돌아와 치료를 받고 휴식을 가지기도 하지만 강정호 선수는 제대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현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과 힘든 일상을 보냈다. 그에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해줄 상대가 없었다. 당연히 그의 내면에 에너지가 쌓였을 것이고 상당한 압력이 형성됐을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두자. 이런 식의 해석이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주어서도 안 된다. 그가 사고를 낸 원인에는 이런 내면적 요인 외에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어찌 됐든 자유의 존재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정녕 인간다운 이유는 힘든 상황 안에서도 자신의 욕구를 올바른 방식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야구선수와 아이돌에게도 내면의 여백이 필요하다그럼 이제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한 가지에 집중하자. 결과를 내기 위해 과도하게 현재를 희생하며 성과를 내는 것이 미덕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재의 유물론적 사회풍토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인간의 내면은 인공지능과 작동방식이 다르다. 인간은 합리적 정보와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그대로 물불 가리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 인간 내면에는 여백과 공간이 필요하다.
비록 혹독하지만 높은 목표를 향해 현재를 희생하며 도전하는 그 자체가 문제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인간이 목표를 가진다는 것과 그를 위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성취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다만 목표를 달성해가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내면에 여백을 만들 수 있는 삶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올바르게 시련과 고난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나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미래의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목표의 성공 여부를 떠나 과거에 있었던 희생과 억압의 시간이 그 당시 올바르게 소화되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의 미래도 계속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는 시기가 비단 어려웠던 그때만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고 난 한참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심리적 에너지라는 물줄기가 막혀서 계속 고이다 보면 본래의 자연스러운 물길이 아닌 다른 물길로 잘못 흐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