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흥망성쇠 함께 한 마지막 보부상

60여 년 역사의 충남 예산군 ‘예산포목’

등록 2017.09.26 13:33수정 2017.09.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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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지나면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명절준비를 가장 먼저 하는 곳은 시장이었다. 이즈음이면 대목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상인들로 시끌벅적했다. 관혼상제를 중시하던,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잠깐 사이에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2017년 9월 19일, 추석을 보름 앞둔 예산상설시장(충남 예산군)은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이웃과 함께 나눌 만큼 충분한 음식준비와 아이들에게만큼은 입혀 주고 싶어 했던 색동저고리, 대처로 나간 자식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이불 홑청 준비... 이런 것들은 모두 옛날얘기가 돼버린 걸까.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여 년 전만해도 100여 곳의 점포가 성업했던 상설시장은 철시한 점포들이 늘어 역사의 뒤안길을 마주하고 있다.

예산포목 신혁철 사장이 옛날, 비단이 잘 팔리던 시절 얘기를 하며 재고로 남은 옷감을 펼쳐보이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상설시장 안쪽 '다'구역으로 들어서면 피복 파는 점포가 즐비하다. 오성상회, 미화상회, 영신사, 영남상회, 풍림상회, 제일상회. 모두 의류를 팔던 점포들이지만, 그 시절의 번성을 철셔텨 안에 가둔 지 오래 됐다. 지금은 승윤상회와 신정상회가 남아 명맥을 잇는 정도다.

그리고 '다'구역 첫머리에 시장 터줏대감 신혁철(75) 사장이 좁혀오는 어둠을 밀어내며 예산포목상회를 지키고 있다.

그가 시장판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언 60년 세월이 지났다. 전통시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오롯이 상인의 길에서 한 번도 비켜서지 않은 이 시대 마지막 보부상이다. 이렇다 할 인생의 역전은 없었다지만, 시장과 함께한 60년은 참으로 드라마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의 고향은 신양 대덕리다. 18살에 예산읍내로 나와 신화백화점(임성로 '웰메이드' 바로 옆)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사장이 박채순씨였다. 평양시에서 가장 큰 백화점(신화)을 운영했는데, 전쟁 때 피난 내려왔다가 분단이 되는 바람에 예산에 정착해 백화점을 낸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6개월 정도 일했다. '보따리 장사를 하더라도 내 장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장판으로 뛰어들었다.

군대를 갔다 왔으니 60년대 후반일 것이다. 당시 예산장은 지금의 위치에 비가림을 할 정도의 장옥만 있었다고 한다. 처음 시작한 장사는 화장품을 비롯한 일용잡화였다.

예산포목상회에 진열돼 있는 양산 등 각종 일용잡화들. ⓒ <무한정보> 이재형


"이것저것 보따리에 싸가지고 유구, 합덕, 신양장들을 돌아다니며 팔았어요. 한마디로 장돌뱅이 생활을 한 거지 뭐. 밑천이 없으니 외상으로 물건 받아서 팔고... 그 시절 얘기를 어떻게 말로 다 해요"

고단했던 시절의 삶을 회상하는 신 사장의 눈가에 잔주름이 일렁인다.

"잡화장사로 물정을 조금 안 뒤엔 기성복 장사를 했어요. 한 단계가 높아진 거지"

지금과 같이 상설시장이 없던 시절, 여전히 인근 시·군지역 장들을 돌며 기성복을 팔았다.

"그땐 이장 저장 장짐을 옮겨주는 일을 하는 마차꾼들이 많았어요. 처음엔 추럭(트럭)에 싣고 다녔는데, 마차가 훨씬 좋았지. 마차 없어지고 나선 경운기에도 한참을 싣고 다녔고"

기성복 장사를 접고 우시장 옆 구옥에서 어물전도 잠깐동안 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했으니 돈을 모으진 못했다. '돈이라는 게 따라야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란다. 그냥 생활 유지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예산포목상회 안에 진열돼 있는 한복. ⓒ <무한정보> 이재형


1979년 상설시장이 들어섰고, 빚을 얻어 다동 6호 10평을 분양받아 아내와 함께 포목점을 열었다. 20여 년 보부상 생활을 접고 생전 처음 올린 간판 상호가 지금의 예산포목상회다. 주단이나 포목상회는 주로 비단 등 혼수품 일체를 취급하는 가게로 시장 안의 꽃이었다.

"왜 '비단장수 왕서방'이란 노래도 있지 않남. 한때는 참 멋쟁이 장사였지. 수준 있게 보였고 인정도 받았지. 90년대까지만 해도 손님이 참 많았어요. 그땐 백일, 돌 챙기고, 혼수 마련하고, 환갑잔치하고 그런 시절 아닌감. 주단 집 뿐만 아니라 골고루 괜찮았지. 사람 사는 거 같았고. 예산에서는 아마도 본정통에 있던 김동렬 포목상회가 원조였는데, 그 양반이 서울로 가고 이기열씨가 물려받아 한참하다가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시장 안에도 너덧 곳이 있었는데 최근에 일광주단까지 문 닫고 태성·동섭·신천주단 세집 남았어요. 그나마 주단 장사가 안되니까 지금은 이불 같은 것도 팔고 그러지"

신 사장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돌이켜보니 "참 평범했다"고 담백하게 말한다.

"어떤 날은 4만 원 어치도 팔고 또 어떤 날은 개시도 못하는 날도 있는데, 한 때 좋은 시절도 있었으니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야지. 또 노는 게 더 힘드니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가게를 열어야지 하는 생각 뿐이라우"

예산포목상회에 진열돼 있는 각종 일용잡화들. ⓒ <무한정보> 이재형


예산포목은 17년 전 신 사장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문을 닫았고, 지금의 1호점 자리로 옮겨 모자와 가방, 양산, 장갑, 스카프 등 잡화를 팔고 있다. 서울 동대문이나 평화시장에서 신 사장이 60년 안목으로 떼오는 물건이어서 그런지 촌티가 나지 않는다.

이번 추석엔 백화점부터 달려가지 말고, 예산상설시장에서 멋진 모자와 스카프, 그리고 부모님들을 위한 따뜻한 이불 한채 장만하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포목 #보부상 #전통시장 #추석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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