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다녀올게요" 학생의 요청, 거절할 수 없었다

여성용과 남성용 화장실의 개수가 같은 학교, 바꾸어야 한다

등록 2017.09.28 14:25수정 2017.09.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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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되요?"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이기도 하다. 쉬는 시간 10분이 끝났는데도, 아이가 눈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 '조용히 다녀오라'고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작년 말에 복도 반대편 화장실 공사를 할 적에는 나부터 수업 시간을 종종 못 지켰는데, 겨울이기도 하고 줄을 서느라 일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학생 기준으로 30명이 화장실 1칸을 쓴 셈이다. 멀리 있는 화장실까지 오고 가느라 휴식 시간이 줄어들고 보니 그동안 불편했지만 참고 살았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내고, 학교 행정실에도 몇 가지 건의한 적이 있다.

첫째, 여자 화장실 개수가 부족하다. 학교는 여성용과 남성용 화장실의 개수가 같다. 양적 평등이다. 학생 중에는 남자가 약간 더 많고, 교직원 중에는 여자가 많다. 그러나 여자 화장실 칸이 더 많아야 한다. 여자는 한 칸에 한 명 들어가서 볼 일을 더 오래 본다. 변기 개수가 같거나, 오히려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를 포함하면 더 많다. 집 밖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항상 느끼는 점이기도 하고, 오래 된 학교라면 새 화장실로 바꿀 때 깨끗한 변기만큼이나 신경 쓸 부분이다.

둘째, 여성 화장실 칸에는 생리대 수거함과 선반이 설치되어야 한다. 생리컵 판매가 시작되면, 이용한 생리컵을 씻는 작은 세면대가 칸 안에 설치되면 금상첨화겠다. 관련 시설물이 화장실 안에 없어서 생리대를 턱에 괴고 볼 일을 보거나, 다 쓴 생리대를 들고 나오는 것은 고역이다. 남자들은 한 달에 3일 이상 팬티 속에 생리대를 착용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새 것으로 바꾸어 봤는가? 당장 시험삼아 생리대를 한 번 차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생리를 선택한 적이 없는데, 여성의 몸을 숙명처럼 여기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셋째, 학교 화장실은 8살부터 60살까지 이용하는데, 좌변기의 크기와 높이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우리 학교는 저학년이 주로 있는 2, 3층은 좌변기가 작고 낮은 편이다. 외부 출장을 다녀보면 화장실 공사가 최근에 진행되지 않은 학교일수록 어른의 몸을 기준으로 한 좌변기만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는 쪼그려앉는 변기가 많은 걸까? 작던 크던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것은 위생 문제만 아니라면 불편한 경험이다.

넷째,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의 성별이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은 대부분 용역 업체 직원이고, 학교 직접 고용이 아닌 듯 한데 50살 이상의 여성이 담당해왔다. 남자 화장실도 여자가 청소한다. 기간제 노동자의 성별은 전국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 청소 여사님은 마땅히 쉬는 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채, 여기 저기서 '알아서' 쉬는 것을 종종 보았다. 어느 학교에서는 창고 앞 빈 공간에 장판을 작게 깔고 가끔 누워 계시더라고 동료 교사가 알려왔다. 화장실과 청소, 여자에 대한 무의식적 이미지는 객관적인 노동 조건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치원 최고 나이 7살 아이들에게 학교 적응 훈련을 시킬 때, 주변 초등학교의 화장실 구조와 상태를 고려하여 '쉬는 시간에 화장실 이용하기'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1학년 아이들은 바지에 가끔 실례를 하고, 고학년이 되더라도 아이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변기는 자주 더러워진다. 위생 관념이 없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기술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쉬는 시간은 짧고, 학교 화장실 구조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탓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방효신 씨는 현재 인권연대 회원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학교 화장실 #청소노동자 #여자 화장실 #배려 #기간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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