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 때 짧은 치마를 입고 짱동을 든 사연을 이야기 해 줬다.
정 의원은 “딸이 시위하다가 감옥에 잡혀갈까 걱정한 부모님이 치마와 구두를 사주셨지만, 그것 입힌다고 못 가는 게 아니다”며 “치마 입고 데모 여러 번 했다”고 설명했다.
유성호
"제 별명이요? 아, 이거 말해도 되나?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음, 불독이었어요, 불독. '쟤는 한번 물면 안 놓는다, 되게 무섭다' 해서." 20대 때 별명을 묻자, 한참을 머뭇거리던 정춘숙 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54세) 의원이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리며 털어놓는다. '불독'이라니, 평온하게 웃는 지금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다. 정 의원은 "졸업한 뒤에 가끔 학교에 갈 때면 저를 그렇게들 부르곤 했다. (동아리방) 칠판에 '불독 왔다. 5시' 이렇게 딱 쓰면 저녁에 후배들이 다 모였다. 일종의, 학교 전설 같은 존재였다"며 크게 웃었다.
그게 벌써 35년 전 얘기다. 정춘숙 의원은 1982년도,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정권 집권 초기 단국대 '새내기'가 됐다. 돌아보면 "마음 편히 못 놀아본 게 제일 아쉽다" 할 정도로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사회과학 공부 아니면 '데모'(학생운동)만 했단다. 당시 외치던 단골구호는 "군부독재 타도, 광주사태 진상규명"이었다고. 30여 년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한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감이 왔다. '이 사람, 원조 쎈 언니구나.'
당시 상황을 들으면 이해가 간다. 정 의원이 대학에 입학하기 불과 2년 전인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엔 '광주사태'로 불렸던 이 사건은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잘 보여주듯 전두환 군부 세력이 한창 시민들을 탄압·고문하던 시기에 벌어졌고, 중무장한 계엄군인들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인해 무고한 광주 시민 중 수백 명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정 의원은 1980년대 초, 자신의 20대를 회상하며 "정의감과 헌신이 동력이 됐던 시절이었다. 믿는 걸 그대로 실천하던, 신념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돌아보면 숨을 좀 쉬면서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그땐 숨 쉬면서 살면 죄악인 줄 알았다"며 아쉽다는 표정도 지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매우 치열하게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기 평가다.
그래서일까. 정 의원은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사진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당시 사진이 없더라. 그땐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데모를 하면 무조건 다 잡혀서 감옥에 가던 때라, 사진은 일부러 안 찍었다. 사진이 있으면 그걸로 경찰이 친구들 관계를 파악해 '얘 누구냐, 불어'라며 조직 사건으로 엮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남은 건 졸업한 뒤 공장에 취업했을 때 찍힌 사진들 뿐이다.
시위 반대해 가출한 적도... "치마 입혔지만, 그런다고 제가 못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