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여행기의 매력은 '사진이 없다'는 것

[재밌다고 소문난 책방일기] <사진 없이 여행일기>를 읽고

등록 2017.10.14 16:38수정 2017.10.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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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없이 여행일기> 허호정 지음 사진 없는 글의 장점을 십분 살린 책
<사진 없이 여행일기> 허호정 지음사진 없는 글의 장점을 십분 살린 책황남희

책방을 열고 명절에 고향에 갔다 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1박 이상의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아, 두 번 있었는데 그것도 책방과 아주 무관한 걸음은 아니었다. 요즘 난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여행을 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못 가는 내 현실을 생각하고 있다. 계속 책방에 매여있으니 좀 떠나볼까도 했지만 그 긴 추석 연휴에도 내내 책방에 있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남들 떠날 때 남아있는 것이고 남들 남아있을 때 떠나는 것이다. 이번에도 남들이 일상으로 돌아올 때 여행하려고 추석 연휴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결국 고양이들이 아파서 못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당분간은 여행 계획을 접는다. 이런 식으로 매번 여행이 접히고 접힌다. 이대로 내 인생에서 여행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닐까?


책 읽는 게 여행하는 거지 뭐, 라는 말은 이젠 사양한다. 나도 물리적인 여행! 내 몸을 움직여 A 공간에서 Z 공간으로, 기차나 비행기 배를 이동 수단 삼아 여행하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난 오늘도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하지만 책을 읽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또 충만하지 않겠는가.(아 이래서 안 된다고!) 

대부분의 여행책은 사진이 빠지지 않는다. 근데 책방에 사진 없는 여행책이 몇 권 있다. 그중 <사진 없이 여행일기>와 <이토록 진지한 유럽 여행기 혹은 이렇게 가벼운 대안경제 여행기>를 얘기하고 싶다. 먼저 <사진 없이 여행일기>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사진 없이 여행일기>(허호정 지음. 독립출판물)는 파리 여행기인데 처음부터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은 아니나 현상 후에 아무것도 없는 필름을 받았다. 그래서 글은 기억에만 의지하여 썼다. 아마 사진이 있었다면 전혀 다른 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더 흥미로운 책이 되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사진 없는 여행일기'가 나름의 색깔을 가지게 된 건 결국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는 파리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또는 파리를 벗어난 지점에서의 일들이 적혀있는데 사진이 없어서 글이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영화 얘기도 하고 책 얘기도 하며, 장소만을 여행하는 것이 아닌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여행하듯 다룬다. 여행지의 루트도 없고 관광지의 정보도 없지만 여행자가 품은 생각들이 담겨있으니 여행일기로는 그만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사진 대신 종이를 규칙 없이 찢어 색을 입힌 그림 10점이 있다. 순간이 만들어낸 우연적인 형태들이다. 이 그림들은 그저 느껴지는 대로 해석하면 그만이다. 사진 없는 자리에 여행과는 무관한 그림이라니. 그런데 마치 미지의 영역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이것이 생각의 여행을 유도한다. (궁금하면 책 사서 읽기!)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사진 없이 글로만 여행기를 적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점들이 있다. 사진이 없으니 그곳을 내 마음대로 그려볼 수 있다. 오롯이 글에 집중할 수도 있다. 사진이 없으니 볼 거라고는 빼곡한 활자뿐. 글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이 표현되기도 한다.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다면 여행에 대한 하나의 목적을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멋진 사진들로 채워진 여행책도 좋고 사진으로만 채워져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난 종종 여행지에서 사진만 찍어대다 정작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들을 본다. 여행이라면 더욱더 이미지를 남기려 들기 바쁘다. 그 경우 사진은 남겠지만 여행자의 현장성은 반감된다.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이 아닌, 여행 이후에 사진이 남았다, 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도 어디만 갔다하면 사진 찍기 바쁘지만 찍기 전에 우선 보고자 한다. 눈으로 좀 더 보고 느끼려 한다. 그때의 상황이나 상태를 카메라가 아닌 내 안에 간직하기. 물론 지금은 여행을 떠나지 않으니 그냥 다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음 그림의 떡은 <이토록 진지한 유럽 여행기 혹은 이렇게 가벼운 대안경제 여행기>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입니다. 이 글은 여행가지 못하고 책방에 앉아 사진없는 여행책들을 읽고 있는 슬픈 내용의 책방일기입니다.
#이후북스 #독립책방 #책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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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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