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입장하는 정진석 의원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열리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권우성
지난 9월 20일 자유한국당의 정진석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노 대통령의 자살은)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정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라디오에 출연해 '최대의 정치보복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라고 밝힌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이 이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때문이라는 박 시장의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복합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당시의 여러 정황을 언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의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정 의원의 발언을 사자(死者)에 대한 막말로 받아들여 비판을 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와 부인 권양숙 여사는 정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정의당의 추혜선 의원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위 사건을 품격의 경계가 무너진 정치의 위험 신호라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의원의 발언은 '막말'이나 '품격이 떨어지는 발언'이라는 비판 이외에, 다른 차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의 발언은 유족과 지지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던 유서를 봤다면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렇기에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의 발언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본질적 차원에서도 위 사건을 대해야 한다. 정 의원의 발언은 대의민주주의가 오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와 정치인의 말 대의민주주의는 국민들이 개별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여 정책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대의 정치를 하고 있다.
왜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인 주권을 가진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제도가 전세계의 가장 보편적인 정치 체제가 될 수 있었을까?
사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못한다'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깝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000만 명에 이른다. 50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모두 직접 정책 결정에 참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수의 국민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의 부재,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넓은 영토, 직접민주주의로 인한 정책 결정 과정의 비효율성 등 다양한 요소가 직접민주주의를 가로막는다.
그 결과 주권을 가진 국민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대표자를 뽑고 자신의 주권을 양도하여 간접적으로 정책 문제를 처리하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가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한 바 있지만, 이는 도시국가 그리고 성인 남성이라는 제한된 시민권 등의 특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와 정치인의 말은 무슨 관계일까? 앞서 말했듯이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국민들은 주권을 대신 행사할 대표자를 선출한다. 선출된 대표자들은 국민들을 대신하여 직접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살아온 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를 반영하여 대표자들 또한 정치 현장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대변하게 된다.
그 결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모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서로를 설득하고, 합의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대화는 말로, 특히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말로 구성된다. 정치인의 말이 단순히 품격의 문제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라는 본질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한 이유다.
정진석 발언, 대의민주주의의 오작동 그리고 일상의 대화그러나 정 의원의 발언은 이러한 대화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민주당은 부대변인을 통해 "망언에 책임질 각오를 하라"고 경고하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사건 재수사해야 한다"며 맞불을 놓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화를 이어가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가뜩이나 여소야대로 인해 민생 개혁법안들이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 의원의 발언은 이를 더욱 지체시켰다. 대의민주주의가 오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이제 정 의원이 말을 신중히 하면 될 일일까? 물론 정 의원의 발언은 앞서도 말했듯이 문제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사실 소위 '막말'은 정당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정치인들의 입에서 발화돼 왔다. 그때마다 정쟁만 부각되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정진석 의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막말은 비단 정치인들의 입에서만 발화되지 않는다.
국민인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래야만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회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수가 다양한 만큼 그들의 목소리 또한 모두가 상이하다.
그렇기에 일상에서도 의견 조율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과정에서 대화, 말은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아니 자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얼굴을 붉힌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막말이 난무한다. 그리고 대화는 막히고, 합의된 의견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등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된 각종 혐오의 목소리는 이를 방증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한다. 정치인의 막말은 우리의 막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치인에 앞서, 국민인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도 막말이 오가서는 안 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품격 있는 말이 오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에서도 품격 있는 대화가 이뤄질 수 있으며, 이는 합의된 정책 결정을 가능케 한다. 물론 그럼에도 소수의 정치인은 막말을 할 것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정치인들을 부단히 감시하고 우리 스스로도 자제해야 한다.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그 잘잘못을 떠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의 발언은 현재 대의민주주의가 오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정 의원만의 문제가 아닌 오랜 시간 지속돼 왔던 문제다. 그 바탕에는 일상에서 만연한 막말이 자리한다. 이제는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시작은 우리, 국민의 대화 속에서 품격을 찾는 일이다. 국민의 품격 있는 말이, 정치인의 품격 있는 말이 되고, 이는 국민들을 위한 정책 결정에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