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변호 맡은 유영하 "조사 늦춰야"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변호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성호
박근혜의 '떼쓰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 중에 언젠가 이런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사실은 예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범죄 혐의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안종범 수석의 수첩에 나와 있는 내용도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적은 것이라 주장할 정도였다. 수석비서관이 받아 적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이 누구의 것이겠는가? 그런데도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부인하다 보니 증거 조사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결국 구속기간을 연장하게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재발부한 것에 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법치를 빌려 정치보복을 하는 것이어서 재판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사건의 정치쟁점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국의 형사 재판 관례에 따르면, 구속영장을 재발부하는 경우는 흔하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그 중대성에 비춰볼 때 구속기간 만료로 곧바로 석방하는 것이 오히려 매우 이례적이다. 박 전 대통령이나 변호인 모두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텐데,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 재발부를 명분으로 출구를 만드려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판은 어떻게 전개될까.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은 형사소송법상 반드시 변호사가 필요한 사건(필요적 변호사건)에 해당한다. 따라서 변호인이 없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 피고인은 법원이 결정한 국선변호인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국선변호인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법원의 허가를 얻어 사임할 수 있다.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자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해 재판 준비를 할 수 없고, 사실상 변호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재판을 거부하려는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들고나올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경우 국선변호인은 그와 같은 사유를 밝혀 사임을 요청할 수 있다.
필요적 변호사건은 피고인에게 방어권과 변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피고인이 방어권을 남용하거나 변호권을 남용하는 것까지 허용하진 않는다. 국선변호사를 거부함으로써 재판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도 아래와 같이 판시하고 있다.
'필요적 변호사건이라 하여도 피고인이 재판거부의 의사를 표시하고 재판장의 허가 없이 퇴정하고 변호인마저 이에 동조하여 퇴정해 버린 것은 모두 피고인 측의 방어권의 남용 내지 변호권의 포기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수소법원으로서는 형사소송법 제330조에 의하여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재정 없이도 심리판결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피고인과 변호인들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거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2항의 규정상 피고인의 진의와는 관계없이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어 있다(대법원 1991. 6. 28. 선고 91도865 판결)'피고인의 방어권 남용과 변호권 남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필요적 변호 사건이라 하더라도 피고인이 변호사를 거부하는 경우엔 변호사 없이 재판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궐석재판도 가능하다. 궐석재판(闕席裁判)이란 피고인이 출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의 출석 없이 재판을 하는 제도다. 한국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리에 의한 인치(引致)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77의2 제1항)'고 밝히고 있다.
또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경우에는 출석한 검사 및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77의2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 출석해서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갖는 것은 형사재판의 기본이다. 그러나 피고인이 재판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에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결국은 사법질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는 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인 셈이다.
궐석재판은 피고인이 항변할 기회가 없으므로 매우 불리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고인의 귀책사유로 출석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야 하며 추후 재심 등의 방법으로 방어할 기회를 줘야 한다. 하지만 피고인이 고의로 재판의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재심 등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