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시집 <파랑은 어디서 왔나>
도서출판 서정시학
시집을 펼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고 카르텔'이었다. 첫째날 뒤풀이 과정에서 시인이 했던 말로 기억한다. 한국의 문단사에서 공고 출신들의 업적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시인 아무개를 예로 들며, 공학적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시인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사실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그렇지 않은가. 독자적 위치를 고수하며 기업들끼리 연합한다는 것이 사전적 정의이다. 공고 출신의 시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시 세계를 지향하며 한국 문단 내 질곡의 역사에서 생존 했다는 것도 또한 우리의 인문적 자산이지 않겠는가.
4부로 나뉜 책에서 1부에 '파랑'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만 6편이다. '파랑에 대하여', '파랑은 어디서 왔나', '저 파랑 뒤에는 무엇이 있나', '글쎄 파랑', '파랑의 서쪽 귀', '파랑파랑'이다. 교직 생활 30년, 등단 30년의 경력에서 시인에게 '파랑'이란 무엇일까.
시집에 해설을 덧붙인 안양대 맹문재 교수는 '화자가 떠올린 그 "파랑"의 정체성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화자의 곁을 떠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상을 넘는 가치이자 고독의 산물이라는 것도 유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필심처럼 뾰족한 정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131쪽)라고 했다.
화자의 곁을 떠난 것, 그것은 그리워 하는 것, 그것은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 수수께끼처럼 은유화된 그의 시 '파랑에 대하여' 일부를 한번 살펴보자.
나는 간혹 생각한다. 그 끝네가 날아간 거리에 대하여네가 날아간 꿈과 그 벼랑의 끝 그 파랑에 대하여간혹 나는 생각한다. 그 끝의 끝네가 넘어야 했던 수많은 일상과어쩌면 무너지는 생각의 촉을연필심처럼 깎던 고독의 날들연필심처럼 뾰족하던 그 파랑에 대하여…… (26쪽)출발 선상이 다르다는 말 속에는 기회가 평등하게 퍼질 수 없는 한국사회의 닫힌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이 한 보 이상 진척 되지 않은 것 같을 때, 그러한 일상을 영유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삶에 한탄의 뿌리를 맺는다. 무너지는 생각의 촉은 연필심처럼 뾰족하고, 간혹 잃어버린 파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리석게 또 그 파랑 때문에 넘어지기도 한다. 때론 현명하게 그 파랑 덕분에 삶을 겨우겨우 버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