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자'는 고영주, 한없는 존재의 가벼움

[주장] MBC 파행 책임지는 것이 명예와 자존심 지키는 일

등록 2017.10.28 13:43수정 2017.10.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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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오른쪽)이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장직을 대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 이사장이 이날 오찬시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사실이 발단이 됐다. ⓒ 연합뉴스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감장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을 놓고 시중이 시끌벅적하다. 그는 증인 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소신대로 했으면 우리나라는 적화되는 길을 갔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예의 '공산주의자'로 몰았다.

이에 앞서 그는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문재인 후보도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이) 적화될 것이 시간문제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발언해 이날 자신의 뜻을 재차 확인해준 셈이다. 이 문제로 그는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고 이사장은 이날 국감 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국감을 보이콧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장에 다녀왔다. 이 일로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은 "피감기관 증인으로서 처신과 발언에 굉장히 조심하셔야 하는데 국감을 거부하고 있는 정당의 연사로 출연했다. (그것이) 공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된 처신인가"라고 따졌다.

고 이사장은 "가면 안 되는 곳인가. 쉬는 시간에 갔다"고 맞받았다. 그리고 "한국당이 MBC 사태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간 것"이라고 맞섰다. 신 의원은 이에 "MBC를 감독하는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좀 제대로 된 처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고 이사장은 "증인은 거기 가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느냐"라고 재차 따졌다.

이로 인해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신 의원은 "지금 이걸 상식적이라고 보느냐", "똑바로 하라"고 질책했고, 고 이사장은 "왜 시비를 거나", "(신 의원이나) 똑바로 하라"고 맞섰다. 결국 상호간에 태도불량, 인격모독 얘기까지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 의원의 질문방법이나 처신도 적절하지 못했지만, 고 이사장의 태도는 도를 한참 넘었다. 그는 어느 의원의 지적대로 이날 국감장에 박사모 일원으로 온 것은 아닌 것이다.

고 이사장 태도, 도를 한참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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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당당한 고영주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고 이사장이 국감을 보이콧한 한국당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동맹이자 우군이라고 생각하고 소속감과 연대감을 과시하기 위해 찾았을까. 아니면 응원을 요청하러 갔을까. 그럴 개연성은 높다. 그렇다면 그는 공영방송의 이사장 자격이 없다. 그가 구여당의 추천으로 방문진 이사가 되고, 뒤이어 이사장이 되었다고 해도 그에게는 불편부당과 공정언론을 지휘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백보 양보해서 찾아갈 수 있다고 보자. 하지만 그는 라면이나 제빵을 만들어 파는 일반회사 사장이 아니다. 나라의 공공재인 정보를 가공해 뉴스를 생산해서 공공의 정의와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언론인이다. 그런데 그는 일반회사 사장도 하지 않을 짓을 했다.

또 백보 양보해서 우군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갔다고 보자. 그러나 국감장이란 곳에서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사과나무 밑에선 갓끈을 매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그는 대놓고 갓끈을 맸다. 오만한 태도이고, 특정정당 특정정파와 카르텔을 형성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MBC는 편파왜곡방송으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시청률도 떨어졌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방송은 구권력의 국정농단과 횡포와 비리는 눈감아주고, 구야당은 집요하게 비판하면서 당시 집권여당의 선전대 역할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MBC 사측은 이에 반발하면서 정론의 가치에 충실하자고 일어선 소속 기자들을 무더기로 축출하고, 심지어 PD를 스케이트장 관리자로 발령을 내는 따위로 자식같은 구성원들을 내쳤다. 이로 인해 장기파업이 진행되고,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 2명도 사퇴한 마당이다. 그래서 그가 국감장에 선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MBC 파행이 지속되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국감장에서 보인 행태는 한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여주었다. 관록있는 공안검사 출신에 백발의 연치가 말해주듯 외관상 권위와 품성이 보이는 그가 그에 걸맞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면서 어디서부터 MBC가 꼬이게 됐나, 왜 이렇게 망가졌나를 성찰하면서 국감장에 임했다면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가자는 식으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막말을 쏟아냈다. 수긍이 가는 올바른 주장이라면 용기로 받아들이겠지만 상식과 동떨어진 언론관과 인생관을 내보이며 바락바락 억지를 부리는 모양새는 볼성사나웠다.

나는 고 이사장이 세상의 존경받는 지도층에서 하찮은 뒷골목의 패거리처럼 전락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두고두고 안타깝다.

여기서 또하나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고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는데, 이 정도 확신에 찬 발언이라면 정확한 근거를 대야 한다. 공산주의자란 말은 바로 그 인생을 거덜내고, 그 가족을 패가망신 시킨다는 사실을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이 더 잘 알것이다. 그래서 툭 던지듯이 발언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동안 국가가 독재에 저항하고, 부패정권에 반발한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고문하고 감옥보내고, 가족들도 비참하게 만든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라는 말은 국민 누구나 공포스런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는 것을 고 이사장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이제는 군림과 폭압과 광기가 아니라 형식적으로나마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명백한 근거에 입각해 이 사실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발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이 최상의 가치로 삼는 법치주의의 근간 아니겠는가.
#이계홍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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