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현 작가 <오마이투쟁>
헤이북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스토리는 실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옳고 그른 거보다 힘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정의가 정해지는 과정들. <오마이뉴스>는 그런 일에 누구보다도 분개하는 매체였기에 기성세대로서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팬으로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분개 이전에 너무나도 황당하고 이해가 안됐다. 이 책은 표절사건 당일부터 시작해서 소위 진보진영에서 잘 나간다는 인터넷매체에게 한 힘없는 창작자가 어떻게 유린되는지 그러나 작가다운 정신으로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어떻게 공적 공간으로 끌고 나와 담론화하는 지를 통쾌하게 그러면서도 매우 유쾌하게 풀어낸 투쟁기록이다.
진보적 세계관을 가졌다, 라는 것과 진보진영에 속해 있다, 라는 말은 결코 같은 뜻이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어느 진영에 있든지 합리적 사고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면 그건 진보적 세계관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고 진영논리에 갇혀서 작은 돌도 가라앉는다는 진리는 무시한 채 대의를 위해 개인적인 피해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못된 버릇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거야말로 꼴보수들보다 못한 행태라는 걸.
그리고 사건 자체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그래도 <오마이뉴스>인데 잘 하겠지'하고 막연히 편들려 했던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부끄러웠다. "네가 읽는 책이 너의 머릴 쳐서 너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대체 책은 왜 읽는 거냐!"는 카프카의 말을 굳이 빌릴 것도 없이 이 의뭉스럽고 재기발랄함을 무기로 혼자서 커다란 언론사를 상대로 뺏긴 물건을 스스로 찾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기록한 <오마이투쟁>은 그래서 내게 충분히 책읽기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줬다.
한 언론사의 민망한 과오를 기록한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미덕은 우리 사회가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제대로 사과하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궁극적으론 '태도'에 관한 고찰이므로 잘못을 저지른 주체 자체에 방점을 찍지 않더라도 공론의 소재가 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제대로 사과하기'에 대한 임상학적 보고서라고 말하면 너무 딱딱하려나? 위트 있는 글을 쓰는 작가답게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유머의 힘을 잃지 않았기에 시종일관 낄낄대며 읽었다.
헬조선을 견디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입장의 동일함'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나처럼 자신이 소위 진보진영에 속해 있으며 진보적 세계관을 갖고 투표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손가락 질 하던 그 손가락 끝에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서 있는 걸 발견할 때다. 그런 면에서 <오마이뉴스>도 가열차고 생기발랄하던 젊은 시절을 지나 '꼰대'가 돼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책 내용상으론 끝까지 제대로 된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책이 나온 후에라도 자신의 치부를 적은 책을 홍보하겠다고 지면을 내어주는 <오마이뉴스>의 용기에 진심으로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게 아니지 않냐'는 영화 속 황정민의 대사처럼 우리가 비록 몸은 늙고 있지만 정신은 계속 파릇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언론사와 불편한 관계를 일부러 만드는 게 될 리스크가 있음에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출판을 결심한 출판사의 용기도 멋지다.
<오마이뉴스>가 정태현 작가와 약속한 걸 제대로 이행했다면, 그러니까 진심으로 피해를 보상해줄 의지가 있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보여졌을 글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채 지나간 <작가의 입장>에 나오는 말이다.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고 귀찮게, 그리고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들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이기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더욱 노력하고, 더욱 경계하며, 더욱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 어찌 정의롭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의'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순진하다고? 역사의 모든 진보와 혁명의 시작은 기성세대들이 비웃던 '작은 순수함'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