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 사망'으로 장사하는 '기레기 기사' 탄생 비화

전직 스포츠연예 기자의 고백... 트래픽 좇는 언론, '데스크' 기능 상실 경우 많아

등록 2017.11.01 14:18수정 2017.11.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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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주혁 tvN <아르곤> 인터뷰 제공사진
배우 김주혁 tvN <아르곤> 인터뷰 제공사진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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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클릭 장사'를 하려는 예의 없는 매체가 말이다.

배우 김주혁씨가 지난 10월 30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발 빠른 취재를 통해 정확한 팩트를 내보내고 고인의 생전을 조명하는 기사를 쓰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고인이 생전에 방송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나 고인의 연인과 관련된 가십성 보도를 하는 언론도 있었다.

문제는 저널리즘과 윤리강령을 망각한 일부 언론의 '클릭 장사'가 연예인 관련 사건이 터졌을 때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언론사의 목적은 회사 수익과 직결되는 트래픽에 집중돼 있다.

특히 연예인 관련 사건이 터졌을 때 연관 기사로 포털사이트가 도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포털사이트 검색어로 해당 연예인이나 관련 단어가 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먹잇감을 향해 달려든다.

검색어가 올라왔을 때, 뭐라도 써서 자사 트래픽을 올려야 하는 것이 언론사의 현실이다. 뭐라도 최대한 겹치지 않고 써야 하다 보니 유독 누리꾼들에게 '과거에 회자' 되거나 '재조명' 돼 '눈길을 끄는' 기사가 많다.

세월호 참사 당시 편집국장의 일성... "자극적으로"


 "더 자극적으로"... 이게 다 트래픽 때문이고, 수익 때문이다. 몇몇 언론은 여기에 목숨을 건다. 여기에 저널리즘은 없다.
"더 자극적으로"... 이게 다 트래픽 때문이고, 수익 때문이다. 몇몇 언론은 여기에 목숨을 건다. 여기에 저널리즘은 없다. pexels

그렇다면 이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기사는 어떻게 탄생 가능한 걸까. 일반적으로 언론사에서는 데스크의 승인이 필요한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런 기사는 데스크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 절대 받을 리 없다. 지난 몇 년간 스포츠연예 매체에 종사했던 내 경험상으로는 말이다.

스포츠연예 매체에서 몸 담았던 내게는 지금의 저런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나 과거를 끄집어내는 기사가 낯설지 않다. 나 역시 그런 기사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는 말 못한다. 연예 관련에서는 너무 많아서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언론의 망가진 저널리즘의 끝을 보여줬던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의 일은 아직도 내게 충격으로 남아있다. 모든 이슈가 세월호로 뒤덮였을 때, 당시 내가 다니던 매체의 편집국장은 내근하던 기자들을 향해 세월호 관련 기사를 쓰라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 더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아라."

당시 온 이슈가 세월호에 몰리자 편집국장이 강구한 방법이었다. 스포츠연예 매체에선 '당연히' 세월호 취재를 할 리 없다. 연예스포츠 매체라고 해서 사회 관련 기사는 안 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반' 카테고리를 이용하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기사 작성은? 다른 매체에서 내보낸 기사의 문단을 바꾸거나 내용을 줄여서 쓰면 된다. 그리고 제목을 약간 수정해 송고하면 가능했다. 물론 데스크는 검토하지 않는다. 기자들 모두가 스스로 포털에 기사를 보낼 권한을 갖고 있었다.

당시 기자들은 수근거렸지만 편집국장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쓰는 당사자들의 스트레스는 엄청났고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바이라인을 내 이름이 아닌 '온라인기자'나 '미디어팀' 같은 가상의 이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일부 회사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자의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쓴다는 소문도 있었다.

내가 쓰고 내가 포털에 보내고... '데스크는 없다'

 내가 쓰고 내가 보낸다? 이건 언론사에서 그리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다.
내가 쓰고 내가 보낸다? 이건 언론사에서 그리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다. pexels

쓰고 싶지 않았지만 트래픽이 안 나오면 편집국장의 독촉이 계속됐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 덜 자극적으로 기사를 쓸 수밖에. 하긴 입사한 뒤 처음 배운 것 중 하나가 '우라까이'(베껴쓰기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였으니까. 어뷰징이나 남이 쓴 기사를 고치는 것이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스포츠 스타라고 해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가십성 기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최근 야구선수 류현진과 아나운서 배지현의 열애 소식이 터지자, 둘의 온갖 과거 사건을 연결시킨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기에서 부진한 선수들이 포털 검색어로 올라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일부 스포츠연예 매체에서는 일반적인 기사조차 제대로 데스킹이 안된 채 포털에 송고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쓴 기사는 쏟아지는데, 검토해야 할 데스크는 지극히 한정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밤에 대부분 경기가 열리는 스포츠의 경우, 데스크가 기사를 검토하기 위해 야간 근무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데스크가 하루 종일 근무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를 자신이 송고할 권한을 갖고 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포털에 기사가 쏟아지는 게 가능한 이유다. 물론 기사의 최종 책임은 작성 기자 본인이 지는 것이다. 기자 스스로가 먼저 정확하게 교열 검토와 팩트체킹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무래도 급한 상황에서 빨리 쓰다 보면 그만큼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게 기사다. 결국 데스크의 부재는 오탈자나 틀린 기록, 잘못된 주술관계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기자는 그렇게 '기레기'가 된다. 최근에는 누리꾼들이 댓글을 통해 기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고 김주혁'에도 여전히 등장한 '클릭 장사'

 고인 앞에서 '클릭 장사'하려는 언론은 많았다.
고인 앞에서 '클릭 장사'하려는 언론은 많았다. 인터넷 갈무리

모든 매체에서 기사를 송고하는 방식이 이러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상당수의 기자들은 팩트를 올바르게 확인하고 좋은 기사를 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이 남긴 이 지저분한 흔적 앞에서 그 어떤 언론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최근 들어 포털에서 어뷰징 기사에 대한 언론사 제재를 강화하면서 과거에 비해 '클릭 장사'를 노리는 기사가 줄어든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물 들어올 때'를 노리는 기사는 여지없이 등장한다. 배우 김주혁씨의 사례처럼 말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악순환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독자들은 소모성 기사에 피곤해지고 언론의 질은 떨어지고 기자들은 욕을 먹는다. 가뜩이나 언론사들의 신뢰도가 전체적으로 내림세를 걷고 있다. 부디 언론 스스로가 반성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주혁 #세월호 #스포츠연예 #기레기 #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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