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이봄
해질녘에 가랑잎을 모아서 불을 피우곤 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이제 잎이나 줄기가 그리 많이 돋지 않으니, 드문드문 모닥불을 피웁니다. 아이들한테 딱히 말하지 않고서 마당에서 불을 피우면, 두 아이는 어느새 알아채고는 슬금슬금 마당으로 나와 불가에 앉습니다.
가을에 봄에 여름에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시골집이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숲에 느긋하게 마실을 다닐 수 있는 시골집이란. 자전거를 조금 달리면 바다가 가까운 시골집이란.
'아이를 돌보며 숲 곁에서 사는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인 만화책 <너의 곁에서>에 나오는 아이는 날마다 숲을 가로질러서 학교를 다닌다고 해요. 일부러 숲길을 가고, 좋아서 숲길을 간다지요. 어머니하고도 곧잘 숲마실을 하면서 숲 이야기를 배워요.
만화책을 읽는 동안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숲 이야기를 들려주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즐겁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불을 피우면서 피어오르는 불꽃하고 연기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차근차근 알려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선생님, 저 밤나무는요, '친절한 나무'라고 엄마가 이름 붙여 줬어요. 친절한 나무는 친절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지 해도 된대요." "어떤 거라도?" "네. 말하기 힘든 마음 같은 것도요." (77∼78쪽)
"선물은 뭐야?" "오! 질문 잘하셨습니다. 봐 봐. 이 병에 체코의 공기를 담아 올게!!" (83쪽)만화책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체코라는 나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한테 '체코 바람'을 선물로 줍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가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마실을 가든, 부산을 떠나 광주로 마실을 가든, 우리는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누리고 싶습니다. 한국을 떠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일본 바람이나 중국 바람을 쐬지요.
새로운 바람을 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숲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기쁨을 지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