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광주시교육청 26지구 20시험장으로 지정됐던 광주 서구 화정동 광덕고등학교 정문이 16일 잠겨있다. 교육부는 경북 포항에서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이날 치를 예정이었던 수능시험을 1주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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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저녁, 정부의 전격적인 수능 연기 발표는 순간 '가짜 뉴스'로 오해할 만큼 충격이 컸다. 문상 중에 소식을 접했는데, 상주 역할을 하던 학교장은 교육청의 후속 조치 내용을 파악하느라 접객을 멈춰야 할 정도였다. 조문객 대다수가 교사였던 탓에, 근신해야 할 상가 주변이 상황을 궁금해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문자와 전화벨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수능 날 평상시처럼 등교하는지를 묻는 내용 일색이었다. 당장 시험장으로 지정된 학교에서는 다시 수업이 가능하도록 원상복구를 해야 하고, 급식도 준비돼 있지 않은 터라 정상 등교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교육청의 지침을 기다려야 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 교육청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듯 대응이 굼떴고, 결국 임시 휴업일로 결정이 났다.
고1, 2학년 아이들이야 때아닌 공휴일 소식에 싱글벙글했지만, 본의 아니게 수험기간이 일주일 더 길어진 고3들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다들 멍한 표정이었다. 수능 연기가 당연한 조치라면서도, 계획에 없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바로 매 맞을 순서였는데 뒤로 밀린 느낌이라고 했다.
수능 전날 밤 교실에서 담임교사, 친구들과 함께 수능 대박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쳤는데, 조금은 머쓱한 표정이었다. 급식소가 닫혔으니 고3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점심 도시락을 각자 챙겨왔고, 지난밤 내다 버린 참고서와 문제집을 주섬주섬 다시 주워들었다. 기숙사에서 짐을 모두 뺐는데, 다시 짐을 챙겨 들어가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놓는 아이도 있었다.
수업을 한다고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별도의 커리큘럼 없이 온종일 자습이다. 낮에는 수능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모의고사를 치르고, 밤에는 1년 365일 그래왔듯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다. 교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과 맥 풀린 허탈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고3에게 느닷없이 주어진 이번 일주일은 막바지 수능 준비에 '올인'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수능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도입된 지 20년도 더 지난 수능이라는 제도를 차분히 성찰해보게 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교사로서 지금껏 수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처음 실시됐던 1994년엔 군 복무 중이었고,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1998년엔 이미 정착 단계여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전 학력고사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한 나름 훌륭한 입시제도로 여겼을 뿐이다.
기존의 학력고사와는 전형 방식은 물론, 교과 영역과 출제 문항의 내용과 수준이 크게 달라 획일적인 공교육을 변화시킬 기회로 여겨지기도 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공부해서는 더 이상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시나브로 교과서의 내용과 수업 방식이 개선될 것이라 확신했다. 초임 시절엔, 보면 볼수록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입시제도였다.
수능 연기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진특강' 파는 학원가
하지만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지금, 수능을 호평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최근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학종)이 불공정하다는 불신이 워낙 팽배해있어, 그나마 수능이 공정하다며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의 인정을 받고 있을 뿐이다. 한낱 그런 이유라면 과거 학력고사와 현재의 수능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선지 이따금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내놓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다.
시작은 거창했을지언정 더 이상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 아니다. 오로지 철저히 서열화한 대학에 점수에 따라 순서대로 진학시키기 위한, 간편하고 효과적인 변별 도구일 뿐이다. 오로지 계량화된 점수나 등급만이 공정하다고 믿는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만 존재 가치가 남아있을 뿐, 도입 취지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말하자면,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꼴이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요령과 과거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얻는 방법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양한 문제를 많이, 그리고 자주 풀어보는 것 외에는 다른 왕도는 없다.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교과서보다는 요약정리가 된 참고서가 낫고, 참고서보다는 다양한 문제가 수록된 문제집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