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나는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교사가 칠판에 적는 걸 그대로 베껴쓰는 방식이 아닌, 자유롭게 질문과 토론할 수 있는 수업"이 진행되고 "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분위기"일 것이라는 기대는 결과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뒷문으로 하교하려다 학생 주임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왜요?"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지말라면 하지마"였다. 미국 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권위주의가 확연히 덜하다. 고등학생을 준 성인으로 취급해, 학생과 교사가 서로 상호존중하는 관계에 놓여있다.
한국에서 반 친구가 머리를 붉게 물들여 학교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학년주임은 그 학생에게 "네 마음대로 할 거면 자퇴를 하라"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미국 학교에서 그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상황을 경험했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함께 카페테리아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교사들이 우리를 불러세웠다. 원인은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물들인 친구의 머리카락에 있었다. 그러나 교사는 그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게 한 후 학교규칙을 상기시켜주고 우리를 보내주었다.
수업에 관한 부분은 내 예상이 틀렸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한국에서는 의무적으로 거의 모든 과목에 논술형 평가가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교사에 따라 수업의 형식과 질, 평가 방식이 크게 달랐다. 그리고 음악수업 등 실기가 중요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미국 학교도 한국만큼 객관식 시험을 많이 봤다. 다른 점이라면, 미국은 소위 말하는 '함정'이란 게 없다. 모의고사 또는 수능 시험 연습문제를 풀어본 학생이라면 선지가 얼마나 헷갈리게 나오는지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문제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선지에서 답을 놓칠 수가 없다.
의외로 놀랐던 점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미국 학교에서 한국 학교만큼 공동체와 단합심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처럼 조회대에 학생들을 일렬로 정렬시키고 훈계를 두는 일은 없다. 내가 다니는 있는 학교에서는 한달에 한 두번 정도 그 달의 학교 모토에 대해 반 친구와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또,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의 상징색인 빨간색을 입도록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한다. 매일, 2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안내방송이 나오면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창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사뭇 보기 힘든 일이다.
현재의 의무교육의 역사는 1800년대 프로이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의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영토를 뺏길 위기에 처하자, 프로이센 정부는 자국민을 군인, 노동자로 개조할 아이디어를 물색했다.
때마침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 이라는 저서를 통해 교육은 자아와 국가의 일치를 위하는 것, 국민이 국가에 애국심을 갖고 희생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 주장했다. 그는 전체를 위해 개개인의 자발적 희생과 자기부정을 일궈낼수 있는 교육을 필요하다고 보았다. 결국 1819년, 프로이센에서 의무교육이 최초로 제정되었다.
이러한 교육제도를 1차 산업혁명 시기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했던 영국에서 차용했다. 공장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860년 공교육을 의무화 시킨 영국의 사례를 보고, 미국에서 정유사업을 운영하던 록펠러 또한 같은 목적을 위해 1903년 일반교육위원회(General Education Board, GEB)을 설립했다. GEB의 목적은 지식인 양성이 아닌 소수의 상류층 엘리트를 위해 군말없이 일할 노동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일반교육위원회는 1903년 보고서에서 이런 목적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우리의 목표는 학교를 통해 사람들을 규칙에 순응하도록, 지배자에게 복종하도록 길들이고 가르치는 것이다. 관리 감독과 지시에 따라 생산적으로 일하는 시민을 양산하는 것이다. 권위를 의심하는 태도,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 이상을 알고 싶어 하는 태도는 꺾어버려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엘리트 지배 계급의 자녀들에게만 제공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저 하루하루 즐기는 일 이외에는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하는, 숙련된 일꾼으로 만들어야한다. 그런 교육이 그들에게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21세기 현재까지도 기계적인 노동자를 생산하는 교육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사회에 필요한 인재는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자신의 일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의 의무교육은 아직도 20세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미국, 어느 쪽이든, 질문거리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의무교육이라는 것이 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 걸까. 세세한 양상은 달라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의무교육의 목적이 개개인의 특징을 지우고 개인보다 학교, 회사, 나라 전체를 위해 움직이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란 점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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