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가슴에 대못질하는 인천공항 정규직들에게

23일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공청회' 참가 후기

등록 2017.11.27 17:56수정 2017.12.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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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요즘 문재인정부 1호 정책인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때문에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노조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책 취지는 좋지만, 혹여나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현실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일이다.

정부 정책과 연관된 일을 해보니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너무 큰물이라 복잡한 것도 많고 이해 당사자들도 많아 정규직 전환 방안이 쉬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올해 안에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지난 23일 정규직 전환 방안에 관해 관련 분야의 연구진들을 모시고 공청회를 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공청회에서 이 사회에 대한 깊은 절망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사회 만들어보자고 가는 이 과정에서 말이다.

공청회에는 인천공항공사 소속 정규직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한국노총 인천공항공사노조 소속 조합원들이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그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 정도가 심각했다. 한 신입사원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힘든 취준생 시절을 거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서 있다. 근데 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들이 너무 쉽게 정규직이 되려고 하느냐"고. "오늘 수능 날이다. 힘들게 수험생활을 한 후배들에게 공정한 사회를 물려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들은 "무임승차! 웬 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라는 피켓도 들고 있었다.

17년간 책임을 회피해 온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직접 책임지라는 것이 잘못된 요구인가.

인천공항 비정규직들은 무조건 인천공항공사 정규직들과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책임지지 않던 공항 운영에 필요한 1만 명의 인력을 공사가 직접 책임지라는 것이지, 임금과 직급 등에 대해서는 차이를 두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무임승차라고 하는데, 15년 동안 공항 운영을 실제로 책임지고 일해 온 것이 무임승차인가?

오죽했으면 좌장인 배규식 박사께서 "취준생의 어려움도 이해하지만, 비정규직들도 매년 고용불안 등 여러분이 모르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발제자로 참석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신규채용이 아니고 기존에 일했던 노동자들의 전환에 관한 문제다. 정부지침에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나와 있다"라고 했으나, 공사 정규직들은 김유선 위원이 발언할 때마다 야유를 보내고 고함을 질렀다.


이 땅 노동자의 절반을 채우도록 강요당한 비정규직은 게으른 루저가 아니다.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김지원이 아나운서 면접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면접관들은 김지원에게 스펙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남들 스펙 채울 때 뭐했냐"고 질문한다. 이에 김지원은 남들이 스펙 채울 때 일했다고 대답했지만, 반응은 싸늘했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스펙 때문에 기회도 얻지 못한 김지원이 서러워 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천공항의 특수경비원 자리에 공항에서 15년 동안 특수경비원으로 일했던 사람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자리가 공항공사 정규직이 되면, 15년 경력자보다 토익점수 더 높은 사람이 적합한 자리로 바뀌는 거냐고 묻고 싶다. 그 신입사원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취업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시간 동안 공항 비정규직들은 놀고먹었던 게 아니라고. 힘듦의 종류는 다를 수 있어도 충분히 노력하면서 힘들게 일해 온 사람들이라고. 당신이 힘든 것이 세상 전부는 아니라고.

왜 공항공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느냐는 인천공항공사 정규직들의 반박 질문 중 정말 얘기해주고 싶었던 세 가지가 있다. 연구자들도 모르는, 공항의 구석구석에서 일하고 그곳을 지켜온 비정규직들이 제일 잘 아는 그런 얘기들.

"인천공항이 간접고용 형태라서 소통이 안 돼 문제가 된 게 있느냐."

있다. 2016년 1월에 인천공항에서 수화물대란이 있었다. 수화물을 운반하는 기계에 고장이나 수화물을 못 싣게 된 비행기들이 지연됐던 사고다. 수화물을 운반하는 기계를 유지·보수·관리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 역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수화물대란이 있기 전부터 기계에는 문제가 있었고, 현장 노동자들은 이거 고쳐야 한다고 건의했었다.

하지만 공항공사 소속이 아니라서 공항공사와 직접 소통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고, 그날 일했던 근무조가 퇴근도  못하고 수백 개의 수하물을 30여 명이 직접 손으로 운반해, 비행기가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간접고용 형태라서 제때 소통이 안 돼 문제가 된 사고가 바로 수화물 대란이다.

"비정규직이라서 산재가 많다고 하는데 산재 통계자료 근거로 제시해라."

산재 통계자료는 없다. 조사를 게을리해서가 아니다. 산재가 나면 용역업체가 다음 입찰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규정 때문에 산재를 모두 숨기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은 크고 넓고 천장이 높고 복잡하고 오가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래서 산재가 많다. 인천공항 외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는 거 알고 있는가? 그 유리 되게 깨끗하다. 사람이 매달려 닦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닦다가 다치는 일이 과연 없을까? 공항 전체에는 20만 개의 등이 있다. 엄청 높은 천장에 달린 등을 고치거나 교체하다가 다치는 일이 없을까? 근데 공항공사는 아마 산재가 거의 없는 거로 알고 있을 거다. 산재가 나도 산재처리를 못 하기 때문에. 그래서 미안하지만 통계자료를 제시할 수가 없다. 계속 이렇게 산재를 숨기고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공항공사에서 직접 관리하고 직접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거다.  

"인천공항이 간접고용 상태라 직접고용인 다른 기관에 비해 특별히 문제 된 게 있느냐."

있다. 올해 초 인천공항 셔틀트레인 변전실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화상을 당한 한 분은 얼굴과 상반신 전체에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이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부실한 안전장치였다. 인천공항 셔틀트레인 유지보수관리 일을 하는 노동자들 역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원청은 인천공항이고 하청업체는 부산교통공사다. 작년까지는 LS산전이었다.

똑같은 업무를 하는 부산지하철의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변전실하고, 인천공항 셔틀트레인의 변전실은 전기 무식자인 내가 봐도 확연하게 다르다. 부산지하철은 안전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작업을 못 하게끔 되어있다. 근데 인천공항은 이런 게 없이 엉성하게 생겼다. 감전돼서 죽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 싶어 아찔했다.

그곳은 인천공항의 시설이지만, 하청업체가 관리하고, 하청업체는 어차피 계약 기간 끝나면 떠날 거니까 굳이 돈 드는 일 말 나오는 일 안 하려고 하고, 그래서 위험하게 설계된 변전실에 누구도 안전장치를 안 만들고 있었던 거다. 사고는 언제든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인천공항이 애초에 직접 제대로 관리하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안전도 책임졌어야 했다.

비정규직 진심마저 짓밟히는 세상, 헬조선을 바꿔야

공청회 끝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정규직들이 이렇게 우리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울먹였다. 이분은 공항에서 5년 넘게 청소일을 하다가 2년 전 부터 노조일을 하고 있다. 노동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현장 업무 대신 노조일을 한다. 이런 사람들을 전임자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대신 뛰어줄 사람들이 있는 거다.

그런데 그러더라. '우는 연기'한 사람 청소원 아니고 '민노총' 간부라고. 그분이 울먹였을 때 일부는 야유하고, 일부는 피식 비웃기도 했다. 구분 짓고 벽을 쳐 위로 못 올라오게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기 급급한 모습. 개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가 결국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거겠지. 과연 세상은 바뀔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김민주 기자는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팀 조직국장입니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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