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범 편들던 아이 "가난해서 그래요"

[서평]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등록 2017.11.30 22:20수정 2017.11.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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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주석이 사망한 날, 학생과 교사는 강당에 모여 비보를 듣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자 역시 천여 명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울음소리 속에서 함께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옮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에서 울부짖는 그 다채로운 소리가 너무 웃기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을 들키면 큰일이므로, 그는 앞 의자에 기대어 머리를 두 팔 깊숙이 파묻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화가 가장 슬프게 울더군. 너무 격하게 울어서 어깨까지 심하게 떨리더라니까." (제2장, '영수')

<허삼관 매혈기>, <살아간다는 것>의 저자 위화는 이 책에서 열 개의 단어를 통해 현대 중국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겪었던 문화대혁명이 마치 부조리극처럼 펼쳐지는 '인민', '영수'로 시작하여, 작가 자신이 어떻게 책을 접하고 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독서, '글쓰기'를 지나, 21세기의 중국 세태를 풍자하듯 그려내고 있는 '산채(짝퉁)', '홀유'로 끝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자기 자신의 경험담을 넘나드는 위화의 재담 속에 녹아 있는 중국 현대사의 아픔이 남 같지 않게 느껴진다.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본다.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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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표지 ⓒ 문학동네

'차이'는 대개 빈부격차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2009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연간 수입이 800위안밖에 안 되는 빈민 인구가 중국에 1억 명이나 있다고 말하자, 한 중국 유학생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고 한다.


"돈은 행복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저자는 이 말을 듣고 몸이 떨려왔다고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늘날 일부 중국인 집단이 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태도는 빈곤과 기아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책에는 실직한 부모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초등학생인 딸은 병이 나서 열이 많이 났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부모에게 말한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가 이웃에게 병원비를 꾸러 갈 것인지를 두고 서로 다툰다.

이웃에게 이미 돈을 너무 많이 빌려 더 이상 빌려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녀는 싸우지 말라면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방에서 잠이나 자겠다는 것이다. 잠시 후에 부모는 방안에서 목을 매 자살한 딸을 발견한다.

또 기억나는 것은 2인조 유괴범의 이야기다. 며칠째 밥도 못 먹던 둘은 한 아이를 납치하고, 전화를 걸어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그들은 어디선가 20위안을 빌려다 도시락을 두 개 샀다.

한 개는 아이에게 먹이고 나머지 하나를 둘이 나누어 먹었다. 범죄 경험이 없던 둘은 어이없게도 몸값을 요구한 공중전화 근처에 있다가 경찰에 잡혔다. 구출된 아이는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아저씨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그냥 풀어주시면 안 되나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이야기 자체가 가슴 아픈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 우리 사회도 저런 모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저런 모습일지 모른다.

홀유

'홀유'란 남을 속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사기'라는 단어와는 달리 비교적 부드럽고 장난스럽다는 함의를 가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기꾼에는 분노하지만 홀유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냥 웃어넘긴다고 한다.

'홀유'의 사례로서 위화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는 의사가 되어 시골로 발령을 받았는데, 가족과 떨어져 홀로 있는 것이 싫어 어머니에게 같이 살자고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사는 것에 대해 싫은 기색을 보이자, 아버지는 그곳이 그다지 시골이 아니며, 현재 살고 있는 도시 항저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곳인 것처럼 묘사한다. 결국, 어머니는 그곳이 항저우의 축소판 같은 곳이라 믿고 가족과 함께 이사를 했고, 곧 자기가 속았음을 깨달았다.

'홀유'가 언제나 스케일이 작은 것은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가까워졌을 때, 어느 지방 신문에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빌 게이츠가 올림픽 관람을 위해 한 고급 주상복합에 방을 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은 절대 구입할 수는 없고, 1년 단위로 임대만 가능한데 임대료도 무려 1억 위안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의 옆 방을 빌릴 수 없겠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우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고, 그 기사는 전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기사는 각지로 퍼져 나갔고, 결국 빌 게이츠 본인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거짓이 밝혀지자 개발회사와 지방 신문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가짜 뉴스를 배포하는 것은 사기 행위에 해당하지만, 중국에서는 홀유로 간주하고 만다고, 저자는 논평한다. 이것은 과대선전이나 오락에 해당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홀유'를 이용하여 부자가 된 사례도 있다. 어느 기업가는 중국 관영 TV의 가장 비싼 광고 시간대를 낙찰받았는데 그에게는 그 비용을 지불할 돈의 1/100도 없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광고 값을 못 내면 자신뿐 아니라 지자체의 망신이 될 것이니 지자체가 자신에게 돈을 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거액을 대출받은 그는 '홀유'의 대가로서 명성도 얻게 된다.

중국인들은 허풍을 떠는 데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차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면 최대한 크게 허풍을 떨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제10장, '홀유')

'홀유' 이야기를 보고 나는 또다시 우리나라를 생각했다. 김형희의 <한국인의 거짓말>에는 <하멜 표류기>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조선인은 남을 속이기를 즐기고,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잘한 것으로 여긴다는 구절이다. 도산 안창호도 우리 민족의 개조를 주창하면서 제일 먼저 없애야 할 것이 남을 속이려는 마음이라고 했다.

'홀유' 이야기를 접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 과거 또는 현재의 모습이 함께 투영되어 보이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형희는 한국에 사기범이 많은 이유가 한국 사람들이 잘 속이기 때문이 아니라 잘 속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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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삼관'에서의 매혈 장면 영화의 원작 <허삼관 매혈기>의 저자 위화는 실제로 의사였던 아버지에게 피를 팔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매혈을 중개했던 이른바, '혈두'들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 신흥 부호가 되었다고 한다. ⓒ 두타연, 판다지오픽쳐스


1978년, 위화는 첫 번째 직업으로 치과의사를 배정받았다. 당시 치과의사는 시골에서 예방주사를 놓는 일도 했다. 주삿바늘을 소독해서 재사용하다 보니, 나중에는 바늘이 휘어서 주사기를 뺄 때 살점이 딸려 올라오기도 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텼다. 가끔 신음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자는 다른 주삿바늘도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주사 맞는 사람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치원에서 예방주사를 놓으려 하자 울음바다가 펼쳐졌다. 주사를 맞은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자, 주사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오히려 더 크게 울었다. 공포로 가득한 아이들의 눈빛을 본 저자는 그날 병원으로 돌아와 주삿바늘의 구부러진 부분을 뾰족하게 갈아내기 시작했다. 한번 구부러진 바늘은 곧게 펴도 몇 차례 사용하면 다시 휘었지만, 바늘을 펴는 것은 이제 그의 일과가 되었다.

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전에 노동자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먼저 자신에게 찔러 보았더라면,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 느낌이 자신의 글쓰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을 때,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후기)

위화는 이 책을 통해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사회의 부조리를 재조명하려는 것도 아니고, 현대 중국 사회의 세태를 안주 삼아 '홀유'의 글을 쓰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조국의 부조리한 모습을 돌아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참된 지식인이라면 시대의 과제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지식인 위화의 모습에서 중국의 희망을 본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2012


#중국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문화대혁명 #사회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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